대마도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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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정벌(對馬島征伐)은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하여 노략질하던 왜구의 본거지인 쓰시마섬(대마도)을 정벌한 사건이다.
간략 정보 제1차 대마도 정벌 (第一次對馬島征伐), 날짜 ...
제1차 대마도 정벌 (第一次對馬島征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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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왜구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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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지휘관 | |||||||
박위(朴葳) 김종연(金宗衍) 최칠석(崔七夕) 박자안(朴子安) | 무로마치 왜구 | ||||||
병력 | |||||||
군함 100척 이상 병력: 10,000명 | 불명 | ||||||
피해 규모 | |||||||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음 |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음 | ||||||
왜선 3백여 척과 가까운 언덕에 있는 관사와 민가를 다 불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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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제2차 대마도 정벌 (第二次對馬島征伐), 날짜 ...
제2차 대마도 정벌 (第二次對馬島征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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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왜구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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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지휘관 | |||||||
5도병마도통처치사 김사형(金士衡) 도병마사 남재(南在) 병마사 신극공(辛克恭) 체찰사 이무(李茂) | 무로마치 왜구 | ||||||
병력 | |||||||
불명 | 불명 | ||||||
피해 규모 | |||||||
불명 | 불명 | ||||||
이 때 동원된 5도 병선의 수와 군대의 규모나 정벌의 결과 등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한편 많은 왜구들이 투항하고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던 점을 주목해 실행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김사형이 1월 30일에 돌아올 때까지 약 2개월간의 사정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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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제3차 대마도 정벌 (第三次對馬島征伐), 날짜 ...
제3차 대마도 정벌 (第三次對馬島征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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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왜구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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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지휘관 | |||||||
3군도통사 유정현(柳廷顯) 3군도체찰사 이종무 중군절제사 우박(禹博)·이숙무(李叔畝)·황상(黃象) 좌군도절제사로 유습(柳濕) 좌군절제사로, 박초(朴礎)·박실(朴實) 우군도절제사 이지실(李之實) 우군절제사, 김을화(金乙和)·이순몽(李順蒙) |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 | ||||||
병력 | |||||||
전함 227척, 군사 17,285명 | 미상 | ||||||
피해 규모 | |||||||
정확히 알 수 없음 | 불명 | ||||||
적병 114명을 참수, 21명을 포로로 했으며, 1,939호의 가옥을 불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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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제1차 대마도 정벌은 1389년(고려 창왕 2년) 박위가 이끌었으며, 제2차 대마도 정벌은 1396년(조선 태조 5년)에 있었다. 가장 유명한 제3차 대마도 정벌은 1419년(세종 1년)에 이종무가 이끈 정벌로, 기해동정(己亥東征)이라고도 한다.[1] 일본에서는 오에이의 외구(일본어: 応永の外寇)라고도 부르며, 당시 대마도에서는 누카다케 전쟁(일본어: 糠嶽戰爭)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