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Kangyg99/작업장/대한민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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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해방이후 3년간의 미국, 소련의 신탁통치 중 신탁통치 후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간의 치열한 항쟁을 거쳐 김구,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 세력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시작했다. 광복 이후 군정기를 거쳐 한반도 이남의 대한민국(남한)과 한반도 이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나뉘게 되었다(1948년 이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에 관해서는 한국의 역사를 참조하라). 이에 따라 역사 부분도 둘로 나뉜다. 이 부분은 그 중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룬 부분이다.
한국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연합군의 승리로 1945년 8월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미∙소의 한반도 분할 정책과 좌∙우익 세력의 갈등으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어 통일 국가를 세우지 못하였다. 특히,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고 기반시설은 대부분 초토화되어 남북 사이의 상호 불신이 깊어 갔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복구하고 1960년대 이후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며 북한의 경제 수준을 추월하는 등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변모하였다. 광복 후에 대한민국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이는 커다란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도 많이 변하였다. 4∙19 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 수많은 민주화 운동으로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가 점차 극복되고, 사회의 민주화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광복 이후에는 학문 활동이 활발해지고 교육의 기회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화가 급속하게 유입되면서 가치관의 혼란과 전통문화의 위축 현상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문화의 다양화가 촉진되고, 반도체 등 몇몇 과학 기술 분야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정치사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험난한 여정의 연속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919년 3.1 운동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포함해 여러 독립 운동 세력들이 치열한 독립 운동을 전개 하였으나 "자유시 참변" 이후 역량은 많이 쇠퇴한 상황이었다. 임시정부의 경우 "광복군"을 조직하여 연합군에 참여해 보려 하였으나 한줌도 안되는 권력다툼 속에 인원도 극소수일 뿐 아니라 실제 일본군과 전투 기록은 전무했다. 공산계 포함 국외의 망명단체나 조선 내부적으로 독립을 쟁취할 역량은 부족했고 연합군(정확히는 미국과 소련)의 공세에 의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해방을 맞이한다. 이후 들어온 미·소 양 국가는 한반도를 분할하여 한국에 정부가 세워지기 전까지 통치하였으며 이는 결국 남북에 두 개의 정부가 세워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야 만다. 전후에는 정치, 경제가 모두 혼란에 빠졌다. 이후 군부 독재가 시작되며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기는 하나, 정치적으로는 계속 억압된 상태였기 때문에 민중의 민주화 요구는 계속되었다. 결국엔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민주화에 시동을 걸었으며 경제적으로도 IMF 위기라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전두환 정권 시절까지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엄령을 자주 선포하였고, 정부가 약화될 때마다 군부에 의한 쿠데타 발생하였다. 독재 정권 하에서는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정착되지 못하였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대통령 간접선거제도를 채택하고,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민주화 요구에 대해 가차없는 탄압이 자행되었다. 각계 각층의 대중들이 참여한 1987년 6월의 민주 항쟁으로 대통령 직접선거제도를 공약한 6.29 선언을 이끌어 내어 이후 민주화가 상당히 진전되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시대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