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민정당
일본 제국의 정당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입헌민정당(일본어: 立憲民政党 릿켄민세이토[*], 약칭: 민정당)은 일본 제국의 정당이다. 입헌정우회와 함께 쇼와 시대의 양대 정당으로 군림하며 제국의회를 양분했다.
1927년 6월 1일 헌정회와 정우본당이 합당하여 만들어졌다. 당명은 정우본당의 마쓰다 겐지가 제안하고 헌정회의 나카노 세이고가 찬성하면서 정해졌다. 하마구치 내각과 제2차 와카쓰키 내각을 조직하여 정우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양대 정당이 되었지만 1940년 8월 15일 신체제 운동을 추진한 대정익찬회로 합류했다.
라이벌격인 정우회가 총재를 중심으로 한 독재 체제 성격이 강했다면 민정당은 전현직 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한 총무위원들이 간부로서 활동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유력 총무위원들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간부 중심의 전제(専制)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정우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정책적으로 황실 중심주의를 주창한 정우회에 대해 의회 중심주의 이념을 표방했다. 정책 입안 및 홍보 책임자였던 나카노는 "입헌민정당은 (중략) 강력한 의회 중심 정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선언했으며 강령에도 "(전략) 의회 중심 정치를 철저히 추진해야 한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본과 노동의 평등', '국제적 원칙에 근거한 세계 평화', '교육의 기회 균등', '행정 개혁' 등도 포함됐다. 1928년 발표한 7대 정책에서는 노동자나 농민을 의식한 사회 정책의 실시나 전력의 국가 통제, 긴축 재정, 행정 개조 등을 주장했으며 자유와 진보를 당의 기본이념으로 삼은 리버럴한 정당이었다.
일본 제국 헌법은 천황의 대명강하로서 내각총리대신을 결정하도록 규정했다. 천황은 원로의 조언을 구해 총리를 지명하고 조각을 명했는데 가토 다카아키 내각부터 이누카이 내각까지 정우회와 민정당의 총재가 총리직에 올랐다. 따라서 1925년부터 1932년까지 민정당은 정우회와 함께 양당제를 구성했다.
민정당의 지지 기반은 지주 등이 지지 기반이던 정우회와 달리 도시 중산층 등이 지지 기반이었다. 한편 미쓰비시 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정치 자금의 주요 스폰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