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호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조동호(趙東祜, 1892년 8월 4일 ~ 1954년 9월 11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풍양. 호(號)는 유정(榴亭)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이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조동호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간략 정보 조동호趙東祜, 출생 ...
조동호 趙東祜 | |
---|---|
출생 | 1892년 8월 4일 조선 충청도 청산현 현내면 백운리 |
사망 | 1954년 9월 11일(1954-09-11)(62세) 대한민국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에서 고문 후휴증 관련 숙환으로 병사 |
성별 | 남성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직업 |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 |
경력 |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사료조사편찬부 위원 독립신문 기자 조선건국동맹 최고위원 대한국민당 상임고문 민주국민당 상임고문 |
부모 | 아버지 조명하(趙明夏) 어머니 박빈(朴彬) |
배우자 | 박소동득(朴小東得) |
자녀 | 아들 조윤구(趙潤九) 아들 조준구(趙準九) |
종교 | 개신교 |
정당 | 무소속 |
웹사이트 | 유정 조동호 기념사업회 |
서명 |
닫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임시의정원을 지냈으며, 1921년 중국 각지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과 중국의 민간인들간에서 한중친선과 한국독립 지원, 반제국주의 활동 등을 목적으로 결성한 민간단체 한중호조사에 관여했다. 1925년에는 조선공산당 창당 참여에 관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에 주요인물로 활동했고, 해방 정국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 근로인민당 등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했다. 중국 상해에서 '구국일보' 신문기자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발간인으로 논설주필을 맡았으며, 국내에서는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 편집고문, 논설주필위원으로 지냈다.
조선 영조 때의 노론 문신인 조문명, 조현명은 그의 8대 방조(傍祖)였다. 이름의 혼동으로 일부에서는 조동우(趙東祐)[1]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