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또는 소련–아프간 전쟁(영어: Soviet–Afghan War) (영어: Soviet–Afghanistan War)은 1979년 12월부터 1989년 2월까지 9년 이상 지속된 전쟁이다. "무자히딘"이라 불리는 반군세력이 기독교 및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소련의 괴뢰정권인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과 소련군의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9년 이상 지속된 전쟁 동안 최소 85만 명에서 최대 15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15][16] 수백만 명이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피난해 난민이 되었다.
글의 중립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2022년 12월) |
이 문서는 영어 위키백과의 Soviet–Afghan War 문서를 번역하여 문서의 내용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 |||||||
---|---|---|---|---|---|---|---|
냉전의 일부 | |||||||
| |||||||
교전국 | |||||||
시아파 무자히딘
| |||||||
지휘관 | |||||||
|
모하마드 아시프 모흐세니 물라비 다우드 ☠ | ||||||
병력 | |||||||
(상시 유지병력 기준)115,000명 55,000명 |
300,000여명 | ||||||
피해 규모 | |||||||
15,052명 전사 417명 실종 53,753명 부상 18,000명 전사 |
90,000여명 전사 75,000여명 부상 | ||||||
민간인 150만 여명 사망[15][16] |
1978년 누르 모하마드 타라키가 쿠데타를 일으켜 친소정권을 세우고 여러 급진적인 근대화 개혁을 시도했다.[17] 이에 저항하는 전통 무슬림들의 반동을 정부는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소련이 침공하기 이전에 이미 정치범 수천 명이 체포되고 2만 7천여 명이 처형당했다. 1979년 4월, 아프가니스탄 대부분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친소정권은 일부 도시지역을 제외한 모든 영토에 대한 통치력을 상실했다.[18]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요청을 받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치하의 소련 정부는 처음에는 군사고문 정도만 파병하려 했으나, 1979년 12월 24일 제40군을 배치하면서 전면 침공에 들어갔다.[19] 수도 카불에 도착한 소련군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하피줄라 아민을 죽이고(폭풍333호 작전)[20] 바브락 카르말을 후임 대통령으로 세웠다.[18]
1980년 1월, 이슬람 협력 기구 가맹 34개국의 외무부처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21] UN 총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104대 18의 표결로 통과시켰다.[21][22]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은 인접한 파키스탄과 중화인민공화국을 통해 막대한 양의 물자와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했고,[11] 미국과 페르시아만의 아랍 군주국들이 자금을 지원했다.[5][6][7][11][23][24][25][26]
무자히딘들은 소규모 세포단위의 유격전을 펼쳤고, 소련군은 도시지역과 주요 도로들만 장악했을 뿐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80%를 차지하는 향촌지역은 소련군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27] 소련은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고 반군들의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시골 마을들을 밀어버리며 관개시설을 파괴하고 수백만 개의 지뢰를 매설하는 등 가혹행위를 자행했고 그 결과 반군과 민간인을 막론하고 수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사살당했다.[28][29][30][31]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소련군은 108,800 명으로 늘어났으며 영토 전역에서 싸움이 벌어졌으나 소련이 부담해야 할 군사적 외교적 비용은 너무나 컸다.[12] 1987년 소련의 새 서기장으로 집권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소련군은 1988년 5월 15일 철수를 시작하여 1989년 2월 15일 전원이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빠져나갔다.
이 전쟁은 대개 냉전의 일부분으로 취급되며, 장기간 지속된 비대칭 전쟁이고 침공한 강대국이 결국 패퇴했다는 점에서 서방세계에서는 “소련판 베트남 전쟁” 또는 “곰 덫”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2][33][34] 곰을 잡은 덫이라는 별명대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의 붕괴에도 크게 기여한 변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