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전투 (17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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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전투(영어: Battle of Quebec)는 미국 독립 전쟁 초기에 대륙군이 시도한 캐나다 침공 작전 중 1775년 12월 31일 퀘벡 시를 지키는 영국군 사이에 진행된 전투이다. 이곳에서 미국은 이 전쟁 최초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리처드 몽고메리가 전사하고, 베네딕트 아놀드가 부상당했으며, 대니얼 모건 등 400명 이상이 포로가 되었다. 퀘벡 식민지 총독 가이 칼튼이 지휘한 퀘벡의 수비대는 영국군 정규병과 캐나다 개척민 징발 병사로 엉망진창이었지만, 극소수의 손실만 입었다.
퀘벡 전투 Battle of Quebe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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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전쟁의 일부 | |||||||
아놀드를 공격하는 캐나다 민병대와 영국군, C. W. 제프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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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대륙군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 ||||||
지휘관 | |||||||
리처드 몽고메리 † 베네딕트 아놀드 대니얼 모건(POW) 제임스 리빙스턴 |
가이 칼튼 앨런 맥클린 | ||||||
병력 | |||||||
900명 (정규군) 300명 (민병대) | 1,800명 정규군과 민병대 | ||||||
피해 규모 | |||||||
50여명 전사 34명 부상 431명 포로 |
5명 전사 14명 부상 |
몽고메리 부대는 11월 13일 몬트리올을 점령하고 뉴잉글랜드 북부의 황야를 빠져 온 아놀드 부대와 12월 초순에 합류했다. 칼튼은 간신히 몬트리올에서 퀘벡으로 도망갔지만, 대륙군의 다음 표적이 된 퀘벡 시는 공격 부대가 도착하기 직전에 원군이 도착하여 시를 지킬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몽고메리 부대는 병사의 징병 기간이 12월 말에 만료가 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부대의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는 폭설이 내리던 그믐 날에 공격했다. 그 작전은 몽고메리와 아놀드가 각각 이끄는 두 부대가 퀘벡의 로어 타운에서 합류한 다음 언덕(어퍼 타운)을 지키는 성벽을 공략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투의 초기 단계에서 몽고메리는 포격을 받고, 전사해 버렸기 때문에 그가 이끌던 부대는 후퇴했지만, 아놀드가 이끌던 부대는 도시 내부로 침입할 수 있었다. 그 공격 초기에 아놀드가 부상당하고 지휘를 물려받은 모건은 시내에서 수렁에 빠져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놀드와 그 부대는 그 봄까지 효과가 없는 포위를 계속했지만, 영국군은 원군을 보강했다.
이 전투와 이후의 포위전 동안 프랑스어를 말하는 캐나다인이 양군 모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륙군은 현지 거주자들에게 물자와 병참을 지원 받았다. 퀘벡 시의 수비대는 현지에서 징병한 민병대로 꾸려졌다. 대륙군이 오자 많은 지지자가 따라왔다. 이후에 남은 자들은 영국군이 식민지 지배를 회복한 후 다양한 형태의 징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