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양자역학의 주요 선구자 (1901–1976)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독일어: Werner Karl Heisenberg, [ˈvɛʁnɐ kaʁl ˈhaɪzn̩bɛʁk]; 영어 발음: /háizənbə̀ːrg/; 1901년 12월 5일 ~ 1976년 2월 1일)[2]는 독일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양자역학의 주요 선구자 중 하나이다. 그는 1925년에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막스 보른과 파스쿠알 요르단과 함께 쓴 후속 논문에서는 양자역학의 행렬역학이 더욱 정교해졌다. 그는 1927년에 발표한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하다.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양자역학의 창안에 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3][노트 1]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 | |
하이젠베르크 (1933년) | |
출생 | 1901년 12월 5일(1901-12-05)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 뷔르츠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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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6년 2월 1일(1976-02-01)(74세) 서독 바이에른주 뮌헨 |
안식처 | 뮌헨 발트프리트호프 |
주요 업적 | |
배우자 | 엘리자베트 슈마허(결혼 1937) |
자녀 | 7 (요헨과 마르틴 포함) |
수상 | 마테우치 메달 (1929) 바나드 메달 (1930) 노벨 물리학상 (1932) 막스 플랑크 메달 (1933)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 (1955)[1] 과학과 예술을 위한 푸르 르 메리트 (1957) 미국 과학 아카데미 외국인 준회원 (1961) 닐스 보어 국제 금메달 (1970) |
과학적 경력 | |
분야 | 이론물리학 |
소속 | 괴팅겐 대학교 코펜하겐 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뮌헨 대학교 |
학위 논문 | 액체 흐름의 안정성 및 난류에 관하여(Über Stabilität und Turbulenz von Flüssigkeitsströmen) (1923) |
박사 교수 | 아르놀트 조머펠트 |
기타 교수 | 닐스 보어 막스 보른 |
박사 학생 | 펠릭스 블로흐 에드워드 텔러 |
유명한 학생 | 윌리엄 V. 휴스턴 |
영향을 줌 | 로베르트 도펠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 |
서 명 | |
하이젠베르크는 또한 난류의 유체동역학 이론, 원자핵, 강자성, 우주선, 그리고 아원자 입자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나치 독일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우란프로옉트의 총책임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1957년 뮌헨의 연구용 원자로와 함께 카를스루에에 최초의 원자로를 계획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는 카이저 빌헬름 협회(곧 막스 플랑크 협회로 개명됨)의 소장으로 임명되어, 1958년 뮌헨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그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1960년부터 1970년까지 막스 플랑크 물리학 및 천체물리학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Physics and Astrophysics)의 소장이 되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또한 독일 연구협회의 회장[4], 원자력 물리학 위원(Commission for Atomic Physics) 위원장, 핵 물리학 연구 그룹(Nuclear Physics Working Group)의 의장, 그리고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Alexander von Humboldt Foundation)의 회장이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