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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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전투(街亭 戰鬪)는 228년 제갈량의 제1차 북벌 중에 일어난 촉한과 위나라의 전투이다.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3년 6월) |
가정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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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제1차 북벌의 일부 | |||||||
삼국지연의에서 마속이 처형되는 장면의 삽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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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촉한 |
위나라 | ||||||
지휘관 | |||||||
마속 왕평 위연 고상 |
장합 허저 장패 신탐 신의 곽회 조진 사마소 사마사 사마의 | ||||||
병력 | |||||||
3만 | 10만 | ||||||
피해 규모 | |||||||
마속의 선봉대 궤멸 |
남안, 천수, 안정 3군의 호응을 받고 진격해 나아가던 촉한 군에 대해, 위나라에서는 명제가 명령하여 조진에게 제군을 지휘하게 하여 미에 주둔케 하고, 장합에게 제갈량을 막게 했다.
당시 숙장인 위연이나 오의를 선봉으로 세우는 것이 중론이었으나, 제갈량은 이 전투에서 마속에게 선봉을 맡기고 가정에서 장합과 더불어 싸우게 했다.
그러나 마속은 제갈량의 절도를 어기고 산꼭대기에서 산 아래로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산꼭대기에 진을 쳤다. 부장인 왕평은 산 밑의 성을 점거하고 위나라와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마속은 끝내 이를 듣지 않고 기각했다.
위나라 장수 장합은 촉한의 마속이 산꼭대기에 진을 쳤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산을 포위한 채 공격하지 않고 내버려 뒀으므로 전투는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전투가 이렇게 진행되면서 마속의 부대는 식수와 식량이 고갈되기 시작했으나 위나라 군대에 포위당한 상태였으므로 보급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사기가 떨어진 촉한의 군대는 장합이 이끄는 위나라 군대에 대패하고 마속이 이끄는 부대는 모조리 궤멸했다.
마속이 가정을 잃자, 제갈량은 전진할 곳을 잃어 한중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이로써 제1차 북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제갈량은 패배의 화근이 된 마속을 군법에 회부시켰으며 참수 조치했다.
많은 장수들과 참모들이 마속의 참수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개인의 재능이나 친분보다 군율을 먼저 생각했으므로 마속의 참수를 강행했다. 또 자신도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직위를 깎아 승상에서 우장군·승상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