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고려의 제31대 임금 (1330–1374)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공민왕(恭愍王, 1330년 5월 23일 (음력 5월 6일)[1] ~ 1374년 10월 27일 (음력 9월 22일), 재위: 1351년 ~ 1374년)은 고려의 제31대 국왕이다. 초명은 기(祺), 휘는 전(顓), 몽골식 이름은 바얀 테무르(몽골어: Bayan Temur[2], 한자: 伯顔帖木兒 '백안첩목아')이며 호는 이재(怡齋)와 익당(益堂)이다.
간략 정보 공민왕恭愍王, 재위 ...
공민왕 恭愍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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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사에 보관되고 있던 공민왕 어진을 찍은 사진 | |
제31대 고려 국왕 | |
재위 | 1351년 10월 6일 ~ 1374년 9월 22일 (음력) |
전임 | 충정왕 |
후임 | 우왕 |
이름 | |
휘 | 고려 이름 왕전(王顓) 왕기(王祺)
몽골 이름 바얀테무르(Bayan Temur, 伯顔帖木兒) |
시호 | 인문의무용지명열경효대왕 (仁文義武勇智明烈敬孝大王) |
능호 | 현릉(玄陵)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
신상정보 | |
출생일 | 1330년 5월 6일(1330-05-06) (음력) |
사망일 | 1374년 9월 22일(1374-09-22)(44세) (음력) |
부친 | 충숙왕 |
모친 | 공원왕후 홍씨 |
배우자 | 노국대장공주
혜비 이씨, 익비 한씨, 신비 염씨, 정비 안씨 |
자녀 | 우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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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차남이며 충혜왕의 동복 동생이다. 묘호는 없으며 고려에서 올린 시호는 인문의무용지명렬경효대왕(仁文義武勇智明烈敬孝大王)이고, 명에서 받은 시호는 공민(恭愍)이다.
즉위 초반에 무신 정권을 혁파하고 배원정책을 추진하여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개혁을 추진하였다. 신돈 등을 등용하여 권문세족과 부패 관료와 외척을 정리하고 신진사대부를 중용하는 등의 노력하였나 노국대장공주의 사후에 개혁의지를 상실한채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말년에 남색과 술, 향락에 탐닉하던 중 1374년 홍륜, 최만생에 의하여 시해되었다. 영명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특히 그림과 서예에 능하였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홉 살에 불과한 아들 모니노(우왕)가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모니노의 생모인 반야가 신돈의 노비라는 점 때문에 후에 정통성 논란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