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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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New England)는 미국 북동부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구릉성(丘陵性) 산지와 해안 지방에 있는[1] 매사추세츠주, 코네티컷주, 로드아일랜드주, 버몬트주, 메인주, 뉴햄프셔주의 6개 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2] 서쪽으로 뉴욕주, 북쪽으로 캐나다의 퀘벡주와 맞대어 있고 동쪽과 남쪽은 대서양이다. 남서쪽으로 롱아일랜드 해협이 있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가장 큰 대도시는 매사추세츠주의 주도인 보스턴으로 인근 지역을 묶어 형성된 대도시권인 보스턴 대도시권은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으로 뉴잉글랜드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우스터, 뉴햄프셔주의 최대 도시인 맨체스터, 로드아일랜드의 주도인 프로비던스등이 포괄되어 있다.
1620년 분리주의 성향의 청교도들이 플리머스 식민지에 정착하였다. 이 식민지는 영국이 북아메리카에 세운 정착지들 가운데 1607년에 세운 제임스타운에 이어 성공적으로 안착한 두번째 정착지였다. 10년 뒤 더 많은 청교도들이 플리머스 식민지 북쪽의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로 이주해 왔다. 1754년부터 7년간 이어진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이들은 이로쿼이 연맹과 동맹을 맺고 프랑스군을 패퇴시켰다.[3]
뉴잉글랜드 초기 이주민들은 매우 엄격한 청교도였고 영국에서 살던 방식을 고수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심지어 마녀 재판 마저 신대륙에 가져왔는데, 1692년의 세일럼 마녀재판은 초기 식민지의 대중적 히스테리를 보여준 어두운 역사를 대표하는 사례로 남아있다.[4]
18세기에 들어 뉴잉글랜드의 정치 지도자들은 영국 의회가 식민지 대표의 입회를 거부하자 대표 없이 과세 없다고 주장하며 영국에 맞서기 시작하였다. 조세 저항 운동이었던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이 자치 요구를 묵살하고 인지세법과 같은 법률로 세금을 강화하자 뉴잉글랜드는 이와 같은 "참을 수 없는 법"에 맞서게 되어 참정권의 요구는 독립 요구로 발전하였다. 1775년 시작된 미국 독립전쟁의 결과 뉴잉글랜드를 포함한 13개 식민지가 새로운 공화국을 선포하여 미국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 무렵 뉴잉랜드의 블랙스톤 밸리와 메리맥 밸리를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뉴잉글랜드의 지형은 남서쪽에 좁게 형성된 대서양 해안평야와 북부와 서부의 애팔래치아산맥으로 이어지는 구릉지인 피드몬트 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급격한 경사를 이루며 고도가 낮아지는 폴 라인이 구릉지와 해안 평야의 자연스러운 경계가 되고, 뉴잉글랜드의 여러 도시는 폴 라인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뉴잉글랜드의 각 주들은 다시 타운으로 불리는 자치체로 나뉜다. 북부의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에 속한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은 여러 타운을 묶은 통합 자치체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인구 통계 조사는 미국을 9개의 구역으로 구분하는데 뉴잉글랜드 지역 전체를 묶어 1구역에 배정되어 있다.[5]
뉴잉글랜드는 청교도에 기반한 문화적 정체성이 매우 강한 지역으로 종종 미국 사회의 자유주의 성향과 갈등을 빚는다. 또한 넓게 산재한 농촌 문화는 다른 산업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보수적인 성향으로 신규 이민의 유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6]
뉴욕 주와 뉴저지 주는 본래 뉴잉글랜드에 속하지 않지만 문화적으로는 뉴잉글랜드에 포함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