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F. 와그너
독일계 미국인 정치인 (1877–1953)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로버트 퍼디낸드 와그너(Robert Ferdinand Wagner, 1877년 6월 8일 ~ 1953년 5월 4일)는 독일계 미국인 정치인으로서 1927년부터 1949년까지 뉴욕주 연방 상원을 지냈다.
로버트 F. 와그너 Robert F. Wagner | |
---|---|
와그너의 초상화 | |
미국의 뉴욕주 상원 | |
임기 | 1927년 3월 4일 ~ 1949년 6월 18일 |
전임 | 제임스 W. 워즈워스 주니어 |
후임 | 존 포스터 덜레스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77년 6월 8일(1877-06-08) |
출생지 | 독일 제국 헤센-나사우 공국 나스테텐 |
사망일 | 1953년 5월 4일(1953-05-04)(75세) |
사망지 | 미국 뉴욕 |
학력 | 뉴욕 시티 칼리지 뉴욕 로스쿨 |
정당 | 민주당 |
배우자 | 마거릿 마리 맥태그 (1908년 ~ 1919년;사망) |
자녀 | 1 |
종교 | 감리교 → 로마 가톨릭 |
독일 이민자이자 미국 상원인 와그너는 미국에서 근로자와 일반 시민을 위한 정치적 옹호자였다. 그는 진보적인 정치를 채택하여 정부가 억눌린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움을 주는 데 책임을 가졌다는 것을 강하게 믿었다. (진보적 아이디어들은 20세기 초기에 미국에서 다양한 단체들로부터 성원을 얻었다.) 상원에서 와그너는 1930년대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과 이후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페어딜 프로그램들의 지도적인 주창자들 중의 하나였다. (뉴딜은 미국의 최악의 경제 위기였던 대공황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자들의 대부분을 원조하는 데 루스벨트 행정부에 의하여 설계된 연방 법령과 프로그램들의 수집이었고, 페어딜은 미국 사회에서 더욱 거대한 인종과 경제적 평등을 흥행하는 데 트루먼의 제안된 프로그램이었다.) 자신의 경력을 통하여 와그너는 산업적 사회에서 근로자 계급을 위한 경제 안보를 마련하는 데 정부의 역할인 것을 다루었다. 경제 안보의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와그너는 비지니스와 노동 사이에 힘의 균형을 찾았고, 노동 조합을 형성하는 데 근로자들의 권리를 성원하였다. 불리한 대변인으로 와그너는 20세기의 나머지를 위하여 거대한 영향을 가진 입법을 창조하였다. 그의 수많은 입법상 승리들은 조합들로 결성하는 데 근로자들의 권리들을 승인하고 빈민들을 위하여 공공 주택 공급을 창조한 것을 포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