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라피크 타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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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라피크 타라르(우르두어: محمد رفیق تارڑ, 영어: Muhammad Rafiq Tarar, 1929년 11월 2일~2022년 3월 7일)는 파키스탄의 정치인으로, 1998년 1월부터 2001년 6월까지 파키스탄의 제9대 대통령을 지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파키스탄 대법원의 수석재판관을 지냈으며,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라호르 고등법원의 제28대 대법원장을 지냈다.[1]
무함마드 라피크 타라르 محمد رفیق تار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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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루크 레가리(2000년) | |
파키스탄의 제9대 대통령 | |
임기 | 1998년 1월 1일~2001년 6월 20일 |
총리 | 나와즈 샤리프 |
전임: 파루크 레가리(제8대) 후임: 페르베즈 무샤라프(제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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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929년 11월 2일(1929-11-02) |
출생지 | 영국령 인도 펀자브주 만디 바하우딘 |
사망일 | 2022년 3월 7일(2022-03-07)(92세) |
사망지 | 파키스탄 펀자브주 라호르 |
국적 | 파키스탄 |
정당 | 파키스탄 무슬림 연맹 나와즈파 |
종교 | 이슬람교 |
타라르는 만디 바하우딘에서 태어나 1951년 펀자브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라호르 고등법원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2] 1966년에 그는 법학자로서의 경력을 추구했다. 타라르는 후에 파키스탄의 최고 법원에서 판사로 일했다. 65세에 은퇴한 후, 그는 나와즈 샤리프의 법률 고문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타라르는 1997년 펀자브주 상원의원이 되었고 같은 해 PML-N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그의 지명서는 선거관리위원회 권한대행에 의해 거부되었다. M. A. 자파르와 아크타르 알리 쿠레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은 변호사 이자즈 후세인 바탈비는 라호르 고등법원에서 자신의 거부에 이의를 제기했고, 전체 판사는 선거 위원회의 거부 명령을 제쳐두었고[3], 그는 선거인단의 457표 중 374표 차이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4]
타라르는 특히 파키스탄 대법원 판사로서 자신의 정부의 해고를 불법적으로 합법화한 것에 자신을 비난한 전 총리 베나지르 부토로부터 반대자들에 의한 강한 비판과 함께 1998년 1월 취임하였다. 국가원수로서 타라르는 헌법 수정 제13조에 서명함으로써 파키스탄의 정부 체제를 반대통령제에서 의회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었다. 그는 총리를 해임하는 예비 권력을 포기했고, 새로운 선거를 촉발하고 국회를 해산시켰다. 그는 또한 대통령직의 권한을 행정부에서 최고 권력자로 제한하는 헌법의 14번째와 15번째 개정안에 서명했다.[5]
1999년 파키스탄 쿠데타가 일어나자 2001년 대통령직을 사임했다.[6] 그는 1999년 10월 12일 쿠데타에 저항했고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최고 통치자에 의해 사임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2002년에 실시된 국민투표를 통해 무샤라프에 의해 계승되었다.[7]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20개월 후, 무샤라프 장군은 국가원수의 선서를 받아 대통령이 된 네 번째 군사 통치자가 되었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