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군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복성군 이미(福城君 李嵋, 1509년 11월 7일(음력 9월 15일)[1] ~ 1533년 6월 28일(음력 5월 26일))은 조선의 왕자이다. 중종의 장남이자 서장남으로 경빈 박씨소생이다. 생모인 경빈 박씨 등이 그를 왕위 계승자로 올리려 하다가 도리어 김안로의 무고를 받고 사형 집행되었다. 이복 남동생인 인종에 의해 복권되었다.
간략 정보 복성군福城君, 휘 ...
복성군 福城君 | |
---|---|
조선 중종의 왕자 | |
이름 | |
휘 | 미(嵋), 학수(鶴壽 / 아명) |
시호 | 정민(貞愍)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09년 9월 15일(1509-09-15) (음력) |
사망일 | 1533년 5월 26일(1533-05-26) (향년 23세) (음력) |
부친 | 중종 |
모친 | 경빈 박씨 |
배우자 | 군부인 파평 윤씨 |
자녀 | 1녀
이운환 |
닫기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서자이자 장남이다. 생모는 경빈 박씨(敬嬪 朴氏)이며, 정부인은 군부인 파평 윤씨이다. 후일 이복 남동생 덕흥군의 3남 하성군을 사후 양자로 정했으나, 입승대통하여 다시 이복 남동생 해안군의 6남인 오강군 이건을 양자로 삼았다. 그러나 오강군도 자녀가 없어 1580년 의안군이 사후 양손자로 지명되었다가 나중에 신성군로 바꾸었다. 신성군은 자녀 없이 사망하여 정원군의 3남 능창군을 입양했다가 능창군이 광해군 때 신경희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자 다시 선조의 서9남인 경창군의 3남 평운군을 입후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미(嵋), 초명은 학수(鶴壽), 시호는 정민공(貞愍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