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후담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신후담(愼後聃, 1702년 2월 8일 ~ 1761년 11월 24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실학자, 성리학자이자 철학자, 소설가이다.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字)는 이로(耳老), 연로(淵老), 호는 하빈(河濱), 돈와(遯窩), 금화자(金華子)이다. 박세흥(朴世興), 성호 이익(李瀷)의 문인이다.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723년(경종 3)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이후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몰두하였다. 그는 유학 뿐만이 아니라 도가(道家), 불가(佛家), 병가(兵家) 사상에도 통달하여 100여권에 달하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는 《칠극 (七克)》, 《직방외기 (職方外紀)》, 《천주실의》, 《영언여작》(靈言蠡勺)등과 같은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이 책들을 통독하여 《서학변 (西學辨)》을 저술하고 이들 서적들에 내포된 천주교리에 대해 하나하나 논평을 가하였다.[1] 또한 삼봉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참고하여 천주교의 영혼, 사후 세계를 비판하였다. 서학변을 비롯한 100여 편의 저서 작품을 남겼고, 소설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나 불교의 사후세계관 모두 실체하지 않는 존재로 백성들을 혹세무민하고 협박한다고 보았다. 일찍이 순암 안정복과 함께 성호학파 가운데 가장 독보적으로 학문적 일가(一家)를 이룬 것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안정복, 이헌경(李獻慶) 등과 함께 공서파 남인의 태두가 되었다.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