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진리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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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사건(일본어: オウム
일련의 사건으로 총 29명이 사망했고(살인 26명, 감금치사 1명, 살인미수 2명), 부상자는 6000명 이상이다. 교단 내부적으로도 밝혀진 것만 5명이 살해당했고 실종자는 30명을 넘는다.[1] 피해자 수의 규모나 사회에 미친 영향, 재판에서의 엄벌 등으로 「일본 범죄사상 최악의 강력사건」으로도 알려졌다.
특히 주목되는 사건이 교단과 맞서던 인권변호사와 그 가족들을 살해한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1989년 11월),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의 교단 지부가 퇴거소송을 당하자 담당 판사를 살해할 목적으로 사린을 살포해 7명을 사망케 하고 수백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마츠모토 사린사건(1994년 6월 27일), 교단에 대한 수사 교란을 목적으로 5량의 지하철에 사린을 살포해 12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지하철 사린사건(1995년 3월 20일)이 꼽힌다. 『마이니치 신문』에서는 이 세 사건을 「옴 3대사건」(オウム3大事件)이라고 표현한다.[2] 『카나가와 신문』, 『일간스포츠』, 『스포츠보지』 등 다른 언론도 2018년 7월 마츠모토 치즈오 등의 사형집행을 보도하면서 사형수들 각각이 3대사건 중 어디에 관여했는지를 전했다.
2011년 12월 그동안 기소된 모든 형사재판이 종결되었다. 기소된 189명 중 13명이 사형, 5명이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3] 2011년 12월 31일에는 16년간 도피한 히라타 마코토가 경시청에 자수, 다음날인 2012년 1월 1일 체포되었고, 히라타의 도피에 협력한 여성 출가신자도 1월 10일 체포되어 양측 모두 기소되었다. 동년 6월 3일 역시 도피자 신세였던 사쿠치 나오코가 은신처에서 체포되었고, 같은 달 15일 역시 도피자 신세였던 타카하시 카츠야가 도쿄도 오오타구 니시카마타의 만화방에서 신병이 확보되어 체포되었다. 이로써 경찰청의 옴진리교 사건에 관한 특별수배 대상이었던 3명이 모두 체포・기소되었다.
히라타는 2016년 1월 13일 징역 9년,[4] 사쿠치는 2017년 12월 27일 무죄가 확정되었다.[5] 옴진리교 사건의 마지막 피고인인 타카하시는 최고재까지 상고한 끝에 2018년 1월 18일 무기징역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1월 25일자로 이의신청이 기각되면서 옴진리교 사건 재판은 완결되었다. 7월 6일 교주 마츠모토 치즈오 외 측근 7명의 사형이 집행되었고,[6][7] 7월 26일 나머지 6명의 사형이 집행되어 형사상으로는 사건이 모두 수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