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워즈워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와 함께 쓴 《서정 담시집》으로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이다.
워즈워스의 걸작을 고르자면, 그가 수차례 수정하고 덧붙인, 자신의 유년시절에 관한 반자전적인 시집인 《서곡》이 대체로 거론된다. 이 시집은 “콜리지에게 바치는 시”[1]로 일반적으로 알려지기 전, 워즈워스가 죽은 해에 아내가 제목을 짓고 출판했다. 워즈워스는 1843년부터 흉막염으로 사망한 1850년 4월 23일까지 영국의 계관시인이었다.[2]
워즈워스는 1770년 잉글랜드 호수 지방의 아름다운 코커머스에서 다섯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1778년 어머니의 사망과 함께, 아버지는 그를 학교로 보내지만, 법률가였던 아버지도 1783년에 세상을 떠난다.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의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자라, 후에 전원시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1787년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입학한다. 1790년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혁명의 열광 속에서 혁명을 옹호했지만, 후년은 보수적으로 기울어져 갔다. 워즈워스는 프랑스 여자인 아네트 발롱과 사랑에 빠져 1792년에 딸을 출산하지만,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혼자 영국에 귀국한다.
워즈워스는 1797년에 콜리지와 사귀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같은 해 여동생 도로시와 함께 콜리지네 집 근처로 이사한다. 이듬해 두 시인은 공동 시집 《서정 담시집》을 발표하여 영국 낭만주의의 중심이 되었다. 1798년에서 1799년 사이 겨울, 워즈워스는 도로시와 함께 독일을 여행하면서 고독과 정신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서곡》이라는 제목의 자전적 작품과 《루시 시편》같은 그의 대표작들을 쓰기 시작한다. 영국에 귀국한 워즈워스는 호수 지방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그곳은 바로 시인 로버트 사우디의 집 근처였다. 그리하여 워즈워스, 사우지, 콜리지는 "호수 시인"들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 워즈워스가 쓴 시의 주제는 주로 죽음과 이별, 인내와 슬픔에 관한 것이었다. 1802년 아네트의 딸 카롤린을 만나기 위해 워즈워스는 여동생 도로시와 함께 프랑스를 여행한다.
워즈워스는 자연의 미묘한 아름다움을 깊이 관찰하고 사랑과 고요함을 노래하여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했다. 그는 또한 1843년 영국의 계관 시인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워즈워스의 작품으로 시집 《서정 담시집》, 《루시 시편》, 《서곡》, 《대륙 여행의 추억》 등이 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