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 체계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기원전 770~403) 말기에 공자(孔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의 학문을 이르는 말로, 동아시아 특유의 종교 및 철학 체계이다. 시조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교(孔敎)라고도 한다.[1] 지켜야 할 인륜의 명분(名分)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하여 명교(名敎)라고도 한다.[2]
유교의 특징 또는 핵심 사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 유교가 실현하고자 하는 진리 구현의 방식이 수기치인이다. 수기치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위정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즉, 유교는 자기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천하를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며 또한 그것을 향한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권선징악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유학자들의 역사 서술에서도 권선징악이 자주 등장하나 실제 역사에서 권선징악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유학자들이 있으나 귀족 세력이 멀쩡하여 역사 서술에 참여할 수 있었던 지역들은 권선징악적 역사와는 거리가 멀며 보다 실증적이다.
유교는 전국시대(기원전 403~221)에는 제자백가의 하나인 유가(儒家)로 등장했지만, 전한의 무제(재위 기원전 141~87) 때 국가 정통의 학문이 된 후로는 중국의 학문과 사상계를 대표하게 되어 현대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와 국민생활에 영향을 주었다.[3]
유교의 주류는 전국시대에는 맹자로 대표되는 내성파의 학문과 순자로 대표되는 숭례파의 학문,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의 훈고학과 경학, 송나라 시대의 성리학, 명나라 시대의 양명학, 청나라 시대의 고증학 등으로 발전 또는 변천되었다. 귀족적 사회나 인간상보다 좌파적이거나 포퓰리즘에 가까운 내용들이 고대부터 많았다.[4][5][6] 따라서 진시황이나 항우 같은 귀족들은 유학자들을 탄압하기도 했으며 근대의 중국에선 양계초가 자본주의란 병을 약인 공산주의로도 고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유학자들은 중국에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