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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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전쟁(Quasi-War, 1798년-1800년)은 1798년부터 1800년에 걸쳐 미국과 프랑스 총재정부 사이에서 선전포고 행위없이 해상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진 양국 해군간에 전쟁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프랑스와 선전포고 없는 전쟁’(Undeclared War with France), ‘해적전쟁’(The Pirate Wars) 또는 ‘절반전쟁’(the Half-War) 등으로 불린다.
유사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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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전쟁의 일부 | |||||||
유사전쟁의 컨스텔레이션 함(좌)과 린수르젠떼 함(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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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영국 | 프랑스 제1공화국 | ||||||
지휘관 | |||||||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스타더트 알렉산더 해밀턴 |
폴 바라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에드메 데푸르노† 빅토르 휴스 앙드레 리고 | ||||||
병력 | |||||||
미국 •54함대: — 프리깃 18척 — 슬루프 4척 — 브리그 2척 — 스쿠너 3척 — 해군 5,700명 — 샤략선원 365명 |
프랑스 알려져 있지 않음 | ||||||
피해 규모 | |||||||
20명 전사 42명 부상. 300명 무역상과 화물 나포[1] 총 2,000척 이상의 배 나포 | 사략선의 몇 명 나포 |
1793년에 1차 대불동맹 전쟁이 벌어지자 입장이 난처해진 미국이 중립을 선언하면서 미영간 관계가 악화되었다.[2] 영국은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를 해상봉쇄하여 프랑스의 전쟁물자 조달을 방해했다. 1778년에 미국과 프랑스간에 체결된 통상동맹조약에 따라 미국에게는 프랑스의 식민지에 대한 외국군대의 공격에 대해서 공동방위에 나설 의무가 있었다.[3] 그러나 미국은 신생 독립국으로 아직 국가의 기초가 확고하지 않았고 군사력도 약한 상태에서 유럽의 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중립을 선언했다.[3]
그러나 영국으로서는 미국이 중립적 지위를 이용하여 프랑스와 교역을 할 경우 해상 봉쇄망에 빈틈이 생기는 만큼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영국은 미국을 자극하여 미국과 프랑스간에 동맹 관계를 분쇄하기 위해서 미국 상선 수백척을 나포 해버렸다.[2] 전쟁을 원치 않았던 미국은 1794년에 다소 굴욕적인 '제이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였다. 그러자 동맹에게 배신당한 프랑스는 외교적인 보복을 가했다.[4]
프랑스는 신임 대사의 부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이 파견한 대표단에게 1778년에 체결한 조약의 폐기를 전제로 막대한 금액의 차관과 뇌물을 요구하였다.[5] 이것이 일명 'XYZ사건'으로 비화되면서 양국은 준 전시 상황으로 치달았다. 선전포고 행위가 없는 상태에서 양국의 해군은 해상에서 산발적으로 충돌하였으며, 상대국의 상선을 포획하기도 하였다. 미국이 영국과 협력하며 해상에서 우위를 점하자 나폴레옹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했다. 1800년에 미불 양국은 지난 1778년에 체결한 조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몰트퐁텐 조약(Treaty of Mortefontaine)을 체결하며 미국과 프랑스 간에 전쟁은 종결되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