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촉한)
한실의 후예이자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말대 황제.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유선(劉禪, 207년 ~ 271년)은 촉한의 마지막 황제(재위: 223년 ~ 263년)이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조위 정통론[1]의 입장에서 전 황제인 유비와 구별하여 유선을 후주(後主)라고 지칭하였다. 자는 공사(公嗣)이다.
간략 정보 유선(劉禪), 재위 ...
유선(劉禪)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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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촉한 황제 | |
재위 | 222년 ~ 263년 |
전임 | 열조 소열제 유비 |
이름 | |
휘 | 유선 |
시호 | 안락사공(安樂思公) [서진] 효회황제(孝懷皇帝) [전조] |
연호 | 건흥(建興) 223년 ~ 237년 연희(延熙) 238년 ~ 257년 경요(景耀) 258년 ~ 263년 |
신상정보 | |
출생일 | 207년 후한 형주 신야
(現 허난성 난양시 신예현) |
사망일 | 271년 |
왕조 | 촉한 |
부친 | 열조 소열제 유비 |
모친 | 소열황후 |
배우자 | 경애황후 장씨, 장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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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적장남이자 감부인의 소생이며, 아명은 아두(阿斗)였다. 조운이 당양 장판파에서 구하였고 유비가 '너 때문에 용맹한 장수를 잃을 뻔하였다'라고 한탄하며 땅바닥에 던져버렸다고 전해지는 아두가 곧 그다.
17세에 유비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고, 유비의 탁고 유지를 받든 승상 제갈량에게 내정과 외정을 총괄케 하고, 신료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제갈량 사후, 장완, 비의, 강유 등에게 국정을 맡기고 정치에 관여를 거의 하지 않으며[출처 필요], 재위 41년 째인 263년에 등애의 기습 공격으로 수도인 성도(成都)가 위태로워지자, 그해 겨울에 위에 항복하였다. 이후 종회와 강유가 위나라에 대한 반란을 꾀하다가 토벌된 뒤, 낙양에 압송되어 안락공(安樂公)에 봉해졌다. 사후 서진에서 내린 시호는 안락사공(安樂思公)이며, 한나라(漢; 전조의 전신)를 세운 유연은 촉한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사시(私諡)로 효회황제(孝懷皇帝)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