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상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윤필상(尹弼商, 1427년 ~ 1504년 윤 4월 19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며 훈구 공신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탕좌(湯佐), 양좌(陽佐), 양경(陽卿)이다. 1455년에 음서로써 원종공신 2등관에 녹훈되고 그 뒤 중시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와 도승지를 지냈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할 때 왕명을 신속히 출납하고 정보를 파악한 공으로 적개공신 1등에 서훈되었으며 세조가 서거하자 3년간 광릉의 수묘관으로 광릉을 돌보았다. 1470년에는 좌리공신 등을 지냈다. 이후 이조판서, 우참찬, 좌찬성 등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지내고 영의정에 올라 파평부원군 (坡平府院君)이 되었다. 1498년에는 이극돈(李克墩)·유자광(柳子光) 등과 함께 무오사화를 주도하여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정여창(鄭汝昌) 등 신진사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하고 정적을 숙청하였으나 그 자신도 폐비 윤씨 폐위 사건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참판 윤경(尹坰)의 아들, 윤곤의 증손, 성종비 정현왕후의 친정아버지 윤호의 5촌 당조카가 된다.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貞顯翁主)와 결혼한 윤사로는 그의 사촌 형이었다. 따라서 세종과 세조, 성종 4대에 걸친 외척이었으며, 원종공신, 적개공신, 좌리공신 등 공신에 3번 녹훈되고 1498년에는 연산군으로부터 궤장을 하사받은 뒤 기로소에 들어갔다. 세종의 서녀 정현왕후의 부마인 윤사로는 그의 사촌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