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1493년)
조선의 군인 (1493–1563)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이광식(李光軾, 1493년(성종 23년) 11월 7일(음력 9월 29일) ~ 1563년(명종 18년) 12월 15일(음력 12월 1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교관이다.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자(字)는 백흠(伯欽). 강원도 강릉 출신.
이광식 李光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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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신, 군인, 정치인 | |
이름 | |
별명 | 자는 백흠(伯欽)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93년 11월 7일 |
출생지 | 조선 강원도 강릉 |
사망일 | 1563년 12월 15일(1563-12-15)(70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
국적 | 조선 |
학력 | 1516년(중종 11년) 무과 급제 |
본관 | 우계 |
부모 | 부 이지방, 모 청송심씨 |
자녀 | 아들 이계변, 이감, 이전, 이용, 딸 이씨, 딸 이씨 |
직업 | 무신, 군인, 정치인. |
기타 이력 | 1516년 과거 급제, 사후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
군사 경력 | |
복무 | 조선 육군 |
복무기간 | 1516년 ~ 1563년 11월 |
지휘 | 평안도, 전라도병영 |
주요 참전 | 여진족 정벌 / 을묘왜변 |
1516년(중종 11)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사어를 지내고 1528년(중종 23) 김해부사에 임명되었다가 군기시첨정을 거쳐 군기시 부정으로 승진했으나 경력이 얕으면서 첨정이 된지 30삭을 넘기지 못하고 승진했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고 사직했다가 김해부사로 부임했다. 그해 무재(武才)가 있다는 이유로 대간의 천거로 갑산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종성과 회령의 부사를 거쳐 1533년(중종 28) 가선대부로 승진하고, 여주목사, 성주목사 등을 지냈다. 1544년(중종 39)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재직 시 원한을 품은 여진족이 평안도 변방을 습격하여 변장들을 살해하자, 여진족 소굴로 직접 찾아가 야인 진무를 하고 돌아왔다. 명종이 즉위 후 임기가 차 체직되어야 되나 유임되어 서쪽 변방의 일을 계속 맡아 보았다. 이후 한성부우윤, 장례원판결사, 병조 참판, 공조 참판,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1555년(명종 10)에는 을묘왜변이 터지자 전라도 해안가로 쳐들어온 왜구를 격퇴하여 전란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도 했다. 아버지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지방(李之芳)이고 어머니는 청송심씨 심선(沈璿)의 손녀딸이다. 장인은 함안 이씨로 평안도 관찰사 함안군(咸安君) 양간공 이세응(李世應)이다. 무신 이전, 이용, 문신 이감(李戡)의 아버지이며 이복남(李福男)의 증조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