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형 (1435년)
조선의 문신, 시인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이수형(李秀亨, 1435년 ~ 1528년 1월 24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시인, 학자이다. 세조의 단종 폐위 및 처단에 분개하여, 처가의 본가인 봉화군 도촌으로 낙향하여 일생을 마쳤다. 음보로 관직에 올라 선교랑(宣敎郞) 전생서령(典牲暑令)을 거쳐 조봉대부 평시서령(平市署令)이 되었다.
이수형 李秀亨 | |
---|---|
출생 | 1435년 조선 한성부 |
사망 | 1528년 1월 24일 (94세) 조선 경상도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 사제동 |
사인 | 병사(노환) |
거주지 | 경기도 한성부->경상도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별칭 | 자(字)는 영보(英甫) 아호(雅號)는 도촌(桃村), 공북헌(拱北軒) |
학력 | 한학 수학 |
직업 | 문신, 학자, 시인 |
종교 | 유교(성리학) |
부모 | 이경창(부) 순흥 안씨 부인(모) |
배우자 | 증 정부인 예안 김씨 |
자녀 | 이대근, 이준근, 이성근, 이양근, 손씨에게 출가한 딸 1명 등 |
친척 | 문절공 김담의 사위, 송석충의 사돈[1] |
1455년(단종 3년)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 원호, 조여 등과 함께 영월에 유배된 단종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다. 이후 낙향, 봉화군 도촌리로 은거하였다.
세조는 사람을 보내 회유하였으나 거절하였고, 단종이 사사되자, 산으로 들어가 단종의 3년상을 마친 뒤, 삼면은 벽이고 북녘으로 문이 있는 집을 짓고 평생을 숨어 살았는데, 이는 단종의 장릉이 영천의 북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1476년(성종 6) 다시 작첩이 내려졌으나 거절하였고, 일생동안 단종을 추모하였다. 봉화읍 도촌리에 그가 손수 심은 괴화나무를 심었는데, 그가 죽자 따라 고사하였다가 1715년(숙종 41) 단종이 노산군에서 임금으로 복위되자 괴화나무가 소생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사후 철종 때 경상도암행어사 임응준(任應準)의 상소로 1858년(철종 9)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되었다가 고종 즉위 후 1870년 다시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로 가증되었다. 무송헌 김담의 사위이자 문인이다. 본관은 우계(羽溪)이며 자(字)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 공북헌(拱北軒), 도은(桃隱)이다. 한성부 출신이다. 자(字)는 영보(英甫), 호는 도촌(桃村), 공북헌(拱北軒), 도은(桃隱)이다. 한성부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