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손
조선의 문신, 언어학자, 유학자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정창손(鄭昌孫, 1402년 3월 11일 ~ 1487년 1월 27일)은 조선국 승문원 예하 부정자·조선국 의정부 영의정 겸 섭정승 등을 지낸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언어학자, 유학자이다. 집현전 학사의 한사람이었으며 훈민정음 창제 당시 훈민정음에 반대한 집현전 학사의 한사람이었다. 1456년 수충경절좌익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 1468년(예종 1년) 익대공신(翊戴公臣), 1471년(성종 2년) 좌리공신(佐理公臣) 등에 세번 녹훈되었다. 봉원군(蓬原君)에 봉군되었다가 1456년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으로 진봉됐다.
정창손 鄭昌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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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승문원 예하 부정자 (朝鮮國 承文院 隸下 副正字) | |
임기 | 1426년 3월 16일 ~ 1441년 4월 30일 |
군주 | 조선 세종대왕 이도 |
섭정 | 영의정 황희(前) |
조선국 의정부 영의정 겸 섭정승 (朝鮮國 議政府 領議政 兼 攝政丞) | |
임기 | 1476년 7월 31일 ~ 1476년 8월 26일 |
군주 | 조선 성종 이혈 |
이름 | |
별명 | 자는 효중(孝仲) 호는 동산(東山) 시호는 충정(忠貞)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02년 3월 11일 |
사망일 | 1487년 1월 27일(1487-01-27) (향년 84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에서 노환으로 병사 |
학력 | 1423년 사마시 급제 1426년 식년문과 급제 |
경력 | 문신, 정치인, 언어학자, 유학자 |
정당 | 훈구파 세력 |
부모 | 정흠지(부), 최씨 부인(모) |
형제자매 | 정갑손(형) |
배우자 | 청풍군부인 청풍 정씨(淸風郡夫人 淸風 鄭氏) |
자녀 | 정괄(3남) |
친인척 | 김질(사위) |
종교 | 유교(성리학) |
웹사이트 | 정창손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가 되었고, 1449년 부제학으로 춘추관편수관, 수사관(修史官)을 겸직하며 《고려사》, 《고려사절요》, 《세종실록》, 《치평요람》 편찬에 참여하고 세 번 과거에 합격했다. 1443년 집현전교가 되었는데 재직중인 이듬해 한글의 제정을 반대하다가 파직, 투옥되었다가 풀려났고 1446년에는 세종이 불경(佛經)을 간행하려 하자, 왕실의 불교 숭상을 강력히 반대하다 다시 좌천되었다.
계유정난과 세조 반정에 협력하였으며, 사위인 김질이 사육신과 세조 제거에 가담한 것을 설득하여 고변하게 했다. 익대공신 2등에 녹훈되었고, 1468년에는 남이의 옥사를 다스린 공로로 좌익공신이 되었으며 1471년에는 성종의 즉위를 지지한 공로로 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익대공신 3등에 책록되고 1469년 원상, 1471년 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궤장을 하사 받았다. 1458년부터 1459년까지, 1461년부터 1462년까지, 1475년부터 1485년까지 의정부 영의정을 지냈다.
관직은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에 이르렀다.사후 청백리에 녹훈되었다. 광해군과 인조 때의 청백리 이원익의 외가 선조이기도 하다. 본관은 동래이고, 자는 효중(孝仲), 호는 동산(東山), 시호는 충정(忠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