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언(존 오웬)은 1616년 영국 옥스퍼드주 스타드햄에서 그곳 교구목사이며 청교도이며 웨일스 출신인 헨리 오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628년(15세)에 퀸스 칼리지 (옥스퍼드 대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았고, 1632년 대학을 나와 문학사 학위를 받고, 1635년에 석사학위 과정을 졸업할 때쯤 이미 수많은 고전에 통달하는 한편 헬라어와 라틴어를 유창하게 하였다.[1] 25세에 회심의 경험을 하게 된 뒤 천천히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된 뒤, 헌신을 하게 되었다.[2] 1637년에는 대주교윌리엄 로드가 가톨릭적인 의식 강요와 새 동상에 반대하는 이유로, 대학을 떠난 뒤, 1651년에는 대주교 로드 사후, 옥스포드대학의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때의 대학은 재정이 파산상태에 있었고, 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오언은 재정비에 착수하여 괄목한 성장을 이루게 했다. 또한 하버드 대학교에 와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였고, 1683년에 천식과 담석으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3]J.I.패커의 같은 신학자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1642년: 런던으로 가서 3월에 "A Display of Arminanism"을 출판함.
1643년: "The Duty of pastors and people distinguished"을 출판함.
청교도 시대의 신학과 신앙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이 존 오언을 가리켜 '최후의 청교도 신학자'로,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오한 신학 저서를 방대하게 내놓은 저술가로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신실한 목회자, 은사받은 대 설교자, 옥스퍼드 그리스도교회의 감독, 옥스퍼드대학교의 부총장, 크롬웰 경의 국목, 한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은 신학적 저작을 낸 저자,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긴 인격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영국이 낳은 위대한 설교자 찰스 해돈 스펄전은 존 오언에 대해 '청교도중의 황태자'(the prince of divines)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제임스 패커는 존 오언에 대해 청교도 중 가장 장 칼뱅과 비슷한 인물로 평가하였다.[5]아브라함 카이퍼는 오언의 성령론과 비교하거나 능가할 책은 없다고 말하였다.
성령론 중에 중생에 관한 교리에서 중생의 준비는 말씀을 듣는 자세에서 비롯됨을 강조하였다. 즉, 성령의 사역은 말씀을 듣는 자가 중생의 사역인 회심을 체험해야 하는 데, 이 과정은 반드시 은혜의 수단인 설교와 기도를 통해야만 한다. 이러한 입장은 바로 청교도의 설교중심의 예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알미니안주의를 설명함: Display of Arminianism , 1643)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루면서 인간의 전적타락교리를 부정하는 알미니안주의를 반박하고 교회를 지키려함.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과에 대하여 설명.
유일한 구세주 거룩한예수 (1648):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만인구원설을 비판. '그리스도는 '만일 믿는다면'이란 조건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 믿도록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라는 제한속죄론을 주장함.
성도의 견인교리를 설명하고 비준함(1645) 신자의 행동 여부에 따라 구원이 결정된다는 알미니우스의 주장에 대하여 구원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며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의 손에서 누구도 택한자를 빼앗아 갈 수 없음을 역설함.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 1647) 그리스도의 신성과 속죄 사역을 부인하는 소시니안주의에 반박하는 논문으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은 것은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받은 것임을 역설함.
신적인 본래 권위에 관하여, 성경의 자증의 빛과 권세(1659): 성경의 영감을 주장하고 태양이 하늘에 떠 있을 때 낮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것은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빛으로부터 스스로 권위를 드러내는 능력 때문이라고 역설함.
전집 13권에서는 교회 분열에 대해(Of Schism)이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오언은 교회가 분열하는 대헤 오직 예배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것만이 성경이 말하는 분열이라고 말하고 있다.[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