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1848년부터 1855년까지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영어: California Gold Rush, 1848년 ~ 1855년)는 당시 캘리포니아 준주 콜로마의 슈터 밀에서 제임스 W. 마셜이 1848년 1월 24일 금을 발견함으로 촉발된 사건이다.[1] 황금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이내 확산되어 미국의 각지, 그리고 해외에서 남녀노소를 비롯한 약 30만 명의 인구가 캘리포니아에 유입되었다.[2]
초기 채굴자들 중 1849년에 캘리포니아로 향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연도를 따서 포티나이너스라고 불렸다. 그들은 배, 또는 마차로 대륙을 횡단했지만 여행 도중에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새롭게 도착한 사람들 대부분이 미국인이었지만 이 골드 러시는 라틴아메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및 아시아 등지의 사람들도 유입되었다. 초기에 채굴자들은 선광 냄비와 같이 단순한 기술로 강바닥의 사금을 찾았다. 후에는 금 탐광을 위한 보다 세련된 기술이 개발되어 적용되었다. 그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기술적 진보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으므로 개인 채굴자보다 회사의 광산개발 비율이 늘어나 갔다. 오늘날 미 달러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금이 발견되어 극소수에게는 막대한 부를 가져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왔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골드 러시의 영향은 상당한 결과를 낳았다. 작은 개척지였던 샌프란시스코는 신흥 도시로 성장하였고, 캘리포니아에는 도로, 교회, 학교 및 다른 마을이 건설되었다. 법률 체계와 정부가 창설되어 1850년 협정의 일부로서 이 해에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31번째 주로서 맞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교통 체계가 퇴화하고, 항공모함이 정기 운항되고, 철도가 깔리자 광업에 이어 캘리포니아의 성장 동력이 된 농업이 주 내에서 광범위하게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골드 러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인디언들은 공격을 받아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으로부터 내쫓겼고, 또한 금 채굴로 환경이 깨끗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