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 쥿사이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하야시 쥿사이(일본어: 林 述斎, 메이와 5년 6월 23일(1768년 8월 5일[1]) - 덴포 12년 7월 14일(1841년 8월 30일)[1])는 일본 에도 시대(江戸時代) 후기의 유학자이다. 하야시 집안(林家) 8대로 하야시 집안의 중흥조로 평가받고 있다.
아버지는 미노 이와무라 번주(美濃岩村藩主) · 마쓰다이라 노리히로(松平乗薀), 할아버지는 교호 개혁(享保の改革)을 추진한 로주(老中) · 마쓰다이라 노리사토(松平乗邑)이다. 휘는 처음에는 (마쓰다이라) 노리히라(乗衡, のりひら)였고, 나중에 (하야시) 다이라 (衡, たいら)가 되었다.[1]
자는 웅장(熊蔵) ・ 숙침(叔紞) ・ 덕전(徳詮)이다.[1] 호는 쥿사이 외에도 쇼겐(蕉軒), 쇼가(蕉隠) 등이 있었다.[1] 만년에는 대내기(大内記)라고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