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적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정치인 (1610–1680)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허적(許積, 1610년 ~ 1680년 5월 11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학자, 정치인이다. 남인의 중진으로 남인 온건파의 지도자였으며 탁남의 영수였다. 1637년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판서, 형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내고 의정부 영의정(수상)에 이르렀으며, 영의정을 세 번 역임하였다.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해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허적 許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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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의정부 영의정 겸 섭정승 (朝鮮國 議政府 領議政 兼 攝政丞) | |
임기 | 1674년 8월 23일 ~ 1674년 10월 2일 |
군주 | 숙종 이순 |
이름 | |
별명 | 자(字)는 여차(汝車), 호는 묵재(默齋)·휴옹(休翁), 시호는 숙헌(肅憲) |
신상정보 | |
출생일 | 1610년 |
출생지 | 조선 충청도 중원군 엄정면 괴동리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일 | 1680년 5월 11일 |
사망지 | 조선 한성부에서 사사(처형)됨. |
국적 | 조선 |
학력 | 1633년(인조 11) 사마시, 1637년(인조 15) 정시 문과 병과 급제 |
경력 | 문신, 정치인, 학자, 사상가 |
정당 | 사림파 성향 남인 잔존 후예 탁남 세력 |
부모 | 허한(부) 안동 김씨 부인(모) |
배우자 | 초배 광주 이씨 계배 여흥 민씨 첩실 이름 미상 |
자녀 | 서자 허견, 서자 허후 |
친인척 | 조부 허잠, 사촌 허직, 사돈 송준길 |
종교 | 유교(성리학) |
군사 경력 | |
복무 | 조선 관군 |
복무기간 | 1674년 - 1680년 4월 |
최종계급 | 조선 지상수군 도체찰사 숙헌공 시호 추시 |
지휘 | 조선 관군 어영대장 직무대리 조선군 순무사령관 직무대리 |
제1차 예송논쟁이 일어나자 남인의 주요 논객으로 효종은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장남으로 봐야 된다며 3년설을 주장하며 서인들에 맞섰으며, 제2차 예송논쟁에서는 인선왕후를 맏며느리의 예로 1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채택시키고 집권하였다. 1664년과 1671년, 1674년 의정부영의정을 지냈으며, 1674년 세 번째로 영의정에 재직 중에는 현종이 급서하면서 원상으로 정무를 주관했다. 서인 송시열, 김수항 등을 과격하게 비난하는 남인 소장파들을 나무라기도 했다.
서인 송시열의 사형을 놓고 남인 내에서 여론이 갈라졌을 때 온건론을 폈으며, 강경파인 윤선도, 윤휴, 허목의 주장에 맞서 온건파인 탁남의 영수가 되었다. 이후 남인 강경파인 미수 허목과 미묘하게 갈등하였다. 1679년 안마와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으나 1680년 3월 할아버지 허잠이 시호를 추증받은 것을 기념하면서, 왕실, 예조의 허락 없이 유악(기름천막)을 빌려쓴 것이 화가 되어, 그해 4월 서자 허견의 여러 가지 비행과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1795년(정조 20년)에 정조의 특명으로 신원되었는데 이때 같은 남인인 채제공 등이 이를 반대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색으로는 남인이었지만 서인 민광훈의 장모의조카이자 서인 중진인 민유중, 민정중의 외종숙이기도 했다.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자(字)는 여차(汝車), 호는 묵재(默齋) 또는 휴옹(休翁),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한강 정구, 장현광, 이민구의 문인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