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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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姜萬洙, 1945년 6월 30일(음력 5월 21일)~)는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이다. 서울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부가가치세 신설, 금융실명제 도입, 금융시장자율화와 개방 등을 담당하였고, IMF 경제위기 때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다. 이명박대통령후보의 747공약을 기획하였고,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직했다.[1]
이력
요약
관점
경상남도 합천 출생으로 1965년 경남고를 수석 졸업하고, 1969년 서울대 법학과에서 학사 학위 취득하였다. 1970년 행정고시(8회) 재경직에 수석 합격한 뒤 국세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였다. 1985년에서 1988년 주미국 한국대사관 재무관(뉴욕 주재)을 역임하였다.
1986년 뉴욕 주재 재무관 재임 시 부가가치세 도입을 위해 함께 일한 IMF의 테이트 재정국 부국장이 써준 추천서의 도움으로 전공인 법학 대신 경제학 선택으로 뉴욕대 대학원에 입학했다.[2] 뉴욕대학교 대학원은 저녁 6시부터 강의가 시작되어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다.[3] 1987년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계절학기를 포함하여 다섯학기 만에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3]
1988년년에서 1993년까지 재무부 보험국장·이재국장·국제금융국장을 거쳤으며, 1994년~1995년 재무부 및 재정경제원 세제실장으로 일하였다.
1995년~1996년 제14대 관세청장, 1996년~1997년 통상산업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97년~1998년 제4대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일하였다. 1999년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00년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2004년 한나라당의 제 17대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9년 시조문학지 겨울호를 통해 '그리움'이란 시조로 문단에 등단하기도 했다. 합천문학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4][5][6]
2008년 2월 29일~2009년 2월 9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통합된 기획재정부의 초대 장관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 수장을 맡았다.
2009년 1월 19일 기획재정부 장관을 퇴임한 뒤,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7] 2009년 미국 뉴욕대(NYU) 한국동문회(회장 장대환)에서 주는 2009 올해의 자랑스러운 NYU 동문상'을 수상했다.(2009년 신설)[8]
2011년 3월 산은금융그룹(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행장에 취임하였다.
부가가치세 실무자
재무부에 세제국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강만수는 1977년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실무자였다.[9]
기타 주요이력
기획재정부 장관
2008년 2월 29일~2009년 2월 9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통합된 기획재정부의 초대 장관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 수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모토인 '대한민국 747'(연간 7% 성장,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달성)비전 기획을 주도 하였으며 당선 직후 출범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경제 1분과 간사를 맡아 새 정부의 경제 정책도 짰다. 2009년 2월 개각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2009년 2월 12일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취임했다.[10] 강 위원장은 2009년 뉴욕대학교(NYU) 한국동문회(회장 장대환)로부터'2009 올해의 자랑스러운 NYU 동문상'을 받았다. 동문회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맞서 선제적이며 과감한 대응책 추진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경제회복세를 기록하는데 공헌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11]
환율정책
감세정책
소득세
- 취임 후 첫 공식 브리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소득세 면세점을 상향 조정하기보다는 세율을 낮추는 쪽으로 근로소득세 부담을 조정할 것"이라고 인하 방침을 밝혔다.[15]
상속세
법인세
- 취임 후 첫 공식브리핑에서 기업의 투자 증대를 위해 법인세 인하 방침을 밝힌데 이어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주변경쟁국에 비해 높은 수준의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낮추겠다고 발언했다.[16] 2008년 6월 4일에는 기획재정부는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과세표준 기준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법인세법 일부계정법률안[17]과 중소기업을 위한 최저한세율 조정하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18]을 입법 예고했다.
- 법인세 인하 방침에 대해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지만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19] 또한 재벌, 고소득층만 해택이 돌아간다는 비판에 대해 "대기업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세금 경감시 혜택을 많이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20]
종합부동산세
- 강만수는 종합부동산세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과도한 세금, 이란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재직시 종부세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명박과의 관계
제17대 대통령 이명박과 1981년 소망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장로인 이명박은 소망교회 창립 때부터 활동하였는데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강만수가 한나라당 미래경쟁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이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이명박이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에 재직하던 시절인 2005년 8월 강만수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에 기용되었다.[21] 2008년 강만수가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이명박이 대통령 신분임에도 조문을 와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엿볼 수 있다.[22]
저서
- 《한국을 위한 새로운 자금원으로서의 양키본드》(Yankee Bonds as a New Financing Source for Korea) - 석사논문
-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삼성경제연구소, 2005년, ISBN 89-7633-257-1
미디어에서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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