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질문
타임라인
채팅
관점
강재항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Remove ads
강재항(姜再恒, 1689년~1756년)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이다. 자는 구지, 호는 입재, 본관은 진주이다.
한국사에 대한 사론(史論) 전문 서술인 《동사평증》(東史評證)을 저술하였으며, 이는 한 개인이 한국의 전체 통사(通史)에 대하여 사건별로 사론을 더한 최초의 사례였다.
생애
1689년 9월 28일 오시 복주(福州) 춘양현 법전리(경북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에서 강우와 그 부인 진성 이씨 사이의 4남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십구사략》(十九史略)을 배우는데 10여 장을 보고 그 뜻을 알았다고 한다. 어려서는 윤증(尹拯)의 문인이기도 했던 큰아버지 강찬(姜酇) 밑에서 수학하다가, 숙종 35년(1709년)에 직접 윤증의 문인이 되었다. 윤증 사후에는 윤동원(尹東源)을 스승처럼 모셨고, 권구(權絿) · 신익황(申益惶) ‧ 윤광소(尹光紹) 등과 교유하였다.
영조 13년(1737년) 소론 계열의 관인인 조현명(趙顯命)의 천거로 49세의 나이에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임명되었으며, 2년 뒤에는 의영고주부, 1740년에는 한성주부(漢城主簿)가 되었다가 그 가을에 회인현감(懷仁縣監)으로 외직에 나갔다. 그러나 병으로 더 이상 현감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고, 강재항은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스승 윤증의 획일도(畫一圖)와 이이의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 등을 강론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1756년 3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였다. 사후 그의 아들이 그의 저술을 엮어 《입재선생유고》(전20권)을 편찬하였다.
Remove ads
가계
- 할아버지:강각
- 아버지:강우
- 어머니:진성 이씨
- 형: 재숙
- 형: 재휘
- 동생: 재룡
강재항의 본관은 진주이고, 거주지는 경북 봉화(옛 춘양) 법전리 성잠촌이다. 입향조로 강재항의 할아버지인 강각(姜恪)이 맏형 강흡(姜恰)과 함께 병자호란 때에 서울에서 피란을 와서 각각 양지마와 음지마에 정착하였고, 강흡은 잠은파, 강각은 도은파를 형성하면서 봉화에 세거하였다. 음지마 사람들은 노론을, 양지마 사람들은 소론을 지향하였는데, 강재항은 양지마 출신으로 정치적으로는 소론 계열을 자청하였고, 양지마는 지역명으로는 척곡으로 법전리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강재의 생의 대부분의 거주지는 법전리였다.
법전리에 살던 진주 강씨는 정치적으로 남인이 대부분이었던 영남에서는 특이하게도 서인인 노론과 소론을 자임하였으며, 이러한 까닭에 영남 지역에서는 소외된 집안이었을지 몰라도 중앙에 연결이 있어, 법전리에 거주하던 강씨 출신으로 노론 13명, 소론 12명이 대과에 급제하였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중앙 정계에서 보면 갑족에 속하였고, 법전 출신인 강재항 역시 중앙에 진출하는데 여느 영남 남인들에 비해서는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강재항은 처음 큰아버지 강찬으로부터 가학을 배웠는데, 강찬은 기호 지방 소론 계열의 학자인 윤증의 문인이었다. 강재항은 자신의 큰아버지 강찬에게서 배우다 성인이 된 뒤에 윤증에게 편지를 보내어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고, 윤증이 이를 수락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윤증은 171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1년 전인 1713년부터 강재황은 다시 신익황에게 편지를 보내어 배움을 청하였는데, 신익황은 처음에는 율곡의 학설에 경도되어 있다가 이현일을 만나고부터 퇴계의 학설을 긍정하는 쪽으로 전향하였던 인물이다.
집안은 영남에서는 소수파에 해당하는 서인, 그것도 영조 이후에는 노론에 거의 밀려나다시피 하게 된 소론의 학통과 인맥을 잇고 있었음에도, 현지에서 남인들과도 꾸준하게 교류하는 등 비교적 학문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Remove ads
일화
- 하루는 큰아버지인 강찬이 아들(즉 강재항의 사촌)에게 통감절요를 가르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었는데, 강찬이 본서 '한무제기'의 조과의 대전법 대목에서 "소로 밭을 가는 것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공자의 제자 염경(冉耕)의 자가 백우(白牛)인 것으로 미루어 소로 밭을 가는 것은 이미 그 이전에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또렷하게 반박하였다. 강찬은 처음에는 노하며 근거를 대라고 하였으나 강재항은 또박또박 자신이 생각한 근거를 말했고, 화가 풀린 강찬은 "우리 집안을 일으킬 아이다"라고 강재항을 칭찬하였다고 한다.
각주
같이 보기
Wikiwand - on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Remove 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