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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기업인)
대한민국의 LG그룹 창업주 (1907–1969)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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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具仁會, 1907년 8월 27일~1969년 12월 31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LG그룹 창업주이다.
생애
1926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귀향해 지수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하였는데 이것이 사업가로서의 첫 출발이다.[1]
구인회의 집안은 본래 경기 양주, 파주 등지에서 세거하는 정치인 가문이었다. 12대조 구사민은 좌찬성 구사맹의 동생이며 10대조 구음도 승정원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9대조 구문유가 고령현감을 지낸 후 8대조 구반부터 벼슬에 나가지 않고 진주로 내려와 터를 잡고 조부 구연호가 문과 급제 전까지 모두 벼슬에 진출하지 않았다. 구인회의 조부 구연호는 대한제국 시기에 홍문관 교리, 사간원 정언을 지냈다. 따라서 사업을 시작하는데 강한 유교가풍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히려 강한 유교가풍 덕에 할아버지의 지지를 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 사업은 1931년 진주에서 구인회포목상점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해 사돈 관계에 있던 현 GS그룹의 소유집안인 허만정의 김해 허씨 집안과 동업으로 하였고 여러 사업들을 거치면서 진주에서 사업을 정리하면서 많은 토지를 매수해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 만석군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고, 매입했던 토지를 매각한 돈으로 부산으로 건너가 1947년 크림 생산도 시작하였고 1953년 성공하여 락희산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58년에는 금성사를 창립해 라디오 생산도 시작하였고 이어 전화기, 선풍기, 에어컨, TV, 냉장고 등을 대한민국 최초로 생산하는데 기여하였고 럭키사도 치약, 칫솔, 비누, 합성세제 등을 연이어 한국 최초로 생산하였다. 한편으로는 부산 국제신보 사장이 되었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지냈다.
방송 사업에도 뛰어들어 동양방송의 전신인 RSB 라디오 서울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과 함께 설립하여 사장을 지냈으나 이병철이 전자사업에 뛰어들고 둘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사회 활동에도 주력해 1968년 회갑 기념으로 진주에 연암 도서관을 세웠고 1969년 12월 연암문화재단을 창설하였으나, 문화재단 창설 한 달 만에 뇌종양으로 타계했다.[2] 이후 그의 뜻을 받들어 LG그룹에서는 학자 및 학술지원에 기여한 사회저명인사들을 포상, 장려금 등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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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 1966 제3회 상공인의 날 대법원장상
- 1966 5.16 민족상 유공자 감사장
- 1969 한국도서관협회 공로상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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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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