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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펙
미국의 배우 (1916–2003)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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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드리드 그레고리 펙(영어: Eldred Gregory Peck, 1916년 4월 5일 ~ 2003년 6월 12일)은 미국의 배우이자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가장 인기 있는 영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1999년 미국 영화 연구소는 펙을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12번째로 위대한 남자 배우로 선정했다.
샌퍼드 마이스너와 함께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에서 연기를 공부한 후, 펙은 무대 연극에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50편 이상의 연극과 3편의 브로드웨이 작품에서 연기했다. 그는 존 M. 스탈이 연출한 드라마 《천국의 열쇠》(1944년)에서 처음으로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작품으로 첫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로맨틱 드라마 《사랑의 결단》(1944년),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펠바운드》(1945년), 가족 영화 《애정》(1946년) 등 일련의 성공적인 영화에 출연했다. 1940년대 말에는 미지근한 상업적 평가를 받았으며, 이 시기 연기 작품으로는 《패러딘 부인의 사랑》(1947년)과 《위대한 죄인》(1948년)이 있다. 펙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함장 호레이쇼》(1951년)와 성경 드라마 《다윗과 밧세바》(1951년)에 연달아 출연했다. 《킬리만자로의 눈》(1952년)에서 에바 가드너와, 《로마의 휴일》(1953년)에서 오드리 헵번과 함께 출연했다.
그가 출연한 다른 주목할 만한 영화로는 《백경》(1956년 작품과 1998년 미니시리즈), 《나바론의 요새》(1961년), 《케이프 피어》(1962년 작품과 1991년 리메이크), 《오멘》(1976년),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년) 등이 있다. 경력 전반에 걸쳐 그는 종종 "도덕적 신념"을 가진 주인공을 연기했다.[1] 《신사협정》(1947년)은 반유대주의 주제를 다루었고, 《정오의 출격》(1949년)에서 펙의 캐릭터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군 지휘관의 어려움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다루었다. 인종 불평등을 다룬 현대 고전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각색한 《알라바마 이야기》(1962년)에서 애티커스 핀치 역 연기로 찬사를 받았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3년에는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함께 《바티칸의 철십자》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로마에서 수천 명의 탈출한 연합군 포로와 유대인들을 구한 가톨릭 신부 휴 오플래허티 역을 연기했다.
펙은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1947년 비미 활동 위원회에 맞서 도전했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반대자로 여겨졌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1969년 펙의 평생에 걸친 인도주의적 노력을 인정하여 그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펙은 87세의 나이에 기관지폐렴으로 잠들듯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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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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