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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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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view, Biblical worldview)이란 기독교적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체계로 성경적 신학적 개념이나 신념에 근거한 인식론을 이론화하는 것이다. 기독교적 안경을 통해 살아가는 세상을 보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다.[1]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 문화의 형성을 인도한다.
정의
철학자 레오 아포스텔에 따르면 세계관은 존재론이며, 세계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6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2]
1. 세계에 대한 설명.
2. 종말론 - 우리가 어디로 가는 지를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
3. 가치 - 윤리적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하며, 예수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4. 인간행동론 - 행동의 방법론 혹은 행동이론으로 어떻게 우리의 목적에 도착하여야 하는가가?
5, 인식론 - 즉 지식이론으로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8:38)
6. 원인론 - 구성된 세계관에는 자체 기본 구성, 그 기원 및 구성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학자들의 견해들
학자들은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3]
Robert D. Knudsen은 “기독교적 세계관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중심한 진리에 대한 반성으로 심오해진 체계화된 지혜이다”라고 정의 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며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 즉 구속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양승훈 교수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대체로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뼈대 속에서 발전되어 왔다”라고 주장한다. 성경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이 우리의 문화적 사회적 이슈를 바르게 보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그 가치를 새롭게 인정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적 기독교적 세계관을 정의하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성경을 토대로 할 때에 변하지 않는 기본적인 골격을 발견할 수 있다. Albert M. Wolters와 Michael W. Goheen은 성경적 세계관의 고전으로 꼽히는 Biblical Basic for a Reformational Worldview에서 그 골격을 “창조form, 타락deform, 구속reform”으로 제안한다. 창조는 원래의 세계original world를 이해하는 안경이 되어주고, 타락은 현실세계를 진단하는 도구가 된다. 구속은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미래상을 보게 해준다. 최용준은 여기 세 가지에 ‘완성transformation’을 첨가하여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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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세계관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식적인 틀이다. 성경적 세계관은 중요한 주제들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4]
- 우주 / 우주는 하나님이신 말씀이 무(無)로 부터(ex nihil)단번에 완전히 창조하신 것이다. 그 이후로 시간, 공간의 물질로 이루어진 이 우주는 하나님에 의해 유지, 보존된다(전3:14).
- 인간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서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의존적 존재이며, 아울러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 신 / 하나님은 삼위일체, 즉 세 분의 인격으로 계시며 이 분들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실 뿐만 아니라 성육신함으로 아들이라 일컫는 예수그리스도 인격 안에 자신을 계시하신 분이다.
- 존재 /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질서에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바, 보이는 것과 보이진 않는 모든 실재물은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의 전능에 의해 유지, 보존되고 있다. 이것이 존재이다.
- 종교 / 하나님의 주도적인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구체적 응답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복종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이요 관계이며, 이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배와 제도를 함유한다.
- 과학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창1장)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바, 이를 발견해 내어 인류 평화와 복지를 위하는 것이 과학이요 나아가 하나님의 실존을 깨닫는 것이 과학의 참된 목적이다.
- 국가 / 국가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존재하며(단4:17, 25), 국가의 통치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롬13:1-4). 동시에 국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준행할 때 진정으로 존재하게 되며,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총체적인 역사 안에 있다.
- 문화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피조된 자연을 가꾸고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을 부여받았다(창1:28). 인간은 이 명령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문화를 보존하고 가꾸어 나갈 의무와 책임이 있다. 문화는 하나님과 관계성을 가진 인간이 이룩해야 할 사명이다.
신학적 세계관
- 바울은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희망하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다.
- 어거스틴은 하늘의 도성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철저한 구분에 따른 신학적 구조 속에서 율법으로 통치되는 세속나라와 복음으로 다스려지는 교회의 변증법적 구조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 칼뱅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세상이 다스려지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국가, 교육, 교회 그리고 사회 등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관으로서 칼빈주의
제임스 패커는 칼빈주의는 세계관이라고 주장한다.[5]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온 세상의 창조주이며 왕으로 믿는 명확한 시각에서 비롯된 세계관(whole worldview)이다. 그는 칼빈주의는 전 세계의 창조주이자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비전에서 비롯된 총체적 세계관이라고 한다. 칼빈주의는 창조주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모든 일을 그의 뜻의 뜻대로 행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다. 칼빈주의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의 지시와 통제 아래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신 중심적 사고방식이다. 칼빈주의는 다시 말해서 성경의 관점에서 본 성경의 신학이다. 즉 창조주를 자연과 은혜에 있는 모든 것의 근원이요 수단과 목적으로 보는 하나님 중심적 관점이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유신론(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 종교(만물을 주시는 자로서 하나님을 의지함), 복음주의(만물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함)이다. 모두 가장 순수하고 가장 고도로 발달된 형태입니다. 그리고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과 사건의 다양성을 피조물과 교회를 위해 미리 정하신 위대한 계획의 성취로 보는 통일된 역사 철학입니다. 다섯 가지 요점은 하나님이 개인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주권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주장하지 않지만, 칼빈주의는 그 자체로 그가 모든 곳에서 주권자라는 훨씬 더 광범위한 주장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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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학자들
요약
관점
아브라함 카이퍼가 “인간사(인간존재)의 어느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제외될 한 치의 땅도 없다!”라고 한 것은 바로 신앙과 학문의 필연적 연계성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것이 이른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6] 그는 네덜란드의 수상이었으며 정치가이며 “반-혁명당”(여기서 반 혁명당이란 프랑스의 대혁명이 인간 이성의 자율성을 극대화한 운동이었다고 판정하였기에, 그런 세계정신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反혁명당이라는 이름을 지었다)을 창당하고 당수노릇도 한 아브라함 카이퍼는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를 설립하였고 자신이 조직신학을 가르친 신학자이기도 하였다. 그의 개혁 신학적 입장은 북미로 건너가 꽃을 피우게 되는데, 특별히 미시간주 그랜드래피드의 칼빈대학교(Calvin College)와 캐나다 토론토에 나중에 설립된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of Christian Studies)를 중심으로 기독교세계관이 학문적 기반을 갖게 된다. 이 운동은 신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을 강하게 주창하는 운동이다. 여기에 철학자들로서는 앨빈 플랜팅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리처드 마우, 제임스 스미스, 역사가로서는 조지 마스덴, 지질학자 데이비스 영, 천문학자 하워드 반틸, 신학자이면서 인문학자인 엘 월터스,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윤리학자 헨리 스톱, 루이스 스메디스, 철학적 미학자 칼빈 씨어벨트, 올트하우스 등이 있다. 이들 모두는 미국 기독개혁교단(CRCNA, 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가 배출한 걸출한 학자들이다. 그리고 구약학자 바돌로뮤 그리고 세계관 운동에 좋은 책들을 써낸 폴 마샬, 브라이언 월쉬 그리고 리처드 미들턴이 있다. 한국 학자들로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많은 저서와 활동을 하고 있는 전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의 양승훈 교수, 전 총신대 신국원 교수, 한동대 최용준 교수가 있고, 전 서강대 강영안 교수와 전 합신대의 송인규 박사, 이승구박사 등이 있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이승구 박사의 기독교 세계관은 다음과 같다. Ⅰ.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7]
기독교 세계관이란 말을 어렵지 않다. 이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과연 이 세상 전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그 속에 사는 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다루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성경에 비추어 혹시 고쳐야 할 것이 있으면 과감히 고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들이 항상 해야 하는 일이고, 또 항상 해 오는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적 작업의 토대입니다. 이 일을 잘 하려면 먼저 하나님과 성경 앞에서 우리가 매우 솔직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나의 삶과 사고방식을 솔직히 드러내어 봅시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세계관(world-view)이라는 말은 이 세계를 바라보는 눈, 즉 세상을 보는 관점(perspective)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있다고 보는가에 관한 문제가 세계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좀더 구체화하면서 월터스는 "한 사람이 사물들에 대해서 갖고 있는 기본적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이라고 잠정적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렇게 세계관이란, 왈쉬와 미들톤이 말하는 대로, "지각의 틀(perceptual framework)이며,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이고, "삶에 대한 시각(vision of life)"이요, "삶을 위한 시각(vision for life)"이다. 또는 호페커가 말한 바와 같이, "실재에 관한 어떤 사람의 전제들과 확신들의 총합으로, 이는 삶에 대한 그의 전체적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세계관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세상을 볼 수 없는 분들도 그 나름대로 이 세상에 대한 관점과 이해를 지니는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한 그 나름의 관점, 그 나름의 이해가 각자의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제임스 사이어와 같이, "어느 시대의 세계관의 수는 그 시대에 사는 의식적 존재의 수만큼이나 많을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고, 그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 한 후에 그 다양한 세계관들이 일정한 유형들로 구분이 가능함을 생각하면서 "세계관의 수는 무한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세계관이 전혀 문제(a poria)가 되지 않는다. 그저 나름의 관점에서 나름의 이해를 가지고 이 세계 안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세계관에 대한 질문과 탐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도 세계관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식되지 않는 세계관"을 일상적 세계관 또는 생활 세계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또는 내재적 세계관, 암묵리의 세계관(implicit world-view)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관에 대한 질문과 탐구는 이런 생활 세계에 있는 의식되지 않는 세계관을 의식하는 것 또는 그것을 문제로 삼는 것이다. 즉, 단순하고 소박하게 생각할 때는 매우 당연한 것들로 여겨지는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묻는 것 또는 우리의 암묵리의 세계관을 검토하고 평가하는 일이 세계관의 문제이다. 이는 무의식적 세계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제기인 것이다. (철학을 하시는 분들은 이것이 철학적 질문과 무엇이 다른가고 물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같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관에 대한 질문과 탐구는 전문적 철학자가 하는 작업 같이 복잡하고 기술적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홈즈가 제안한 '철학자들의 철학'과 '세계관적 철학'의 구별을 참조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계관적 철학은 "철학자들의 철학의 결과를 세계관과 세계관 내의 특정한 주제들을 형성하고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관은 좀더 일반적인 것으로 철학에 비하면 덜이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왈쉬와 미들톤은 아예 "세계관은 실재의 전체성에 대한 전이론적(前理論的) 견해"라고 하고, 철학은 "실재의 전체성에 대한 이론적 견해"임에 비해서, 각 학문 분과는 "실재의 어떤 측면에 대한 이론적 견해"라고 말하고 있다. 월터스도 "철학과 신학은 학문으로서 학문적이며 이론적인데 반해서 세계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관은...전학문적이다."고 말한다. 물론 암묵리의 세계관, 비의식적인 세계관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시화된 세계관은 전문적인 철학 같이 이론적이며, 학문적이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는 이론적이고 학문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홈즈와 같이 전문적 철학자나 신학자가 하는 전문적 철학이나 전문적 신학과 비교되는 세계관적 철학과 세계관적 신학을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외현화된 세계관은 세상이 실재로 있다고 보느냐,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보느냐, 그렇게 보이는 그것 자체가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별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보느냐 등등의 복잡한 문제를 묻는 것이다. 따라서 외현화된 세계관은 그저 관점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가 가진 관점에서 이해한 내용을 어느 정도는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view)이란 그리스도인이 가진 세계관(Christian's world-view)을 뜻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이해한 내용 - 그 둘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존재하고,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보다 중요한 질문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세계관도 일반적으로는 그저 그의 의식 가운데 암묵리의 세계관(implicit world-view)으로 있을 뿐, 외현적인 세계관(explicit world-view)으로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을 문제 삼고 논의하고 말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인 안에 있어서 그의 이 세상에서의 삶을 인도하는 세계관을 좀더 명확히 하고 외현화시키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안에 암묵리에 있는 세계관을 이끌어 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하고 바른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도리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잘 배워온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를 한 일이 없어도 평소에 자신들이 힘써 해 오던 바가 바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려는 바라고 느끼게 되는 일이 많은 것이다. (특히 세상과 우리의 삶 전체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사상에 충실한 교회의 교우들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예를 들어서, 카이퍼의 칼빈주의는 결국 기독교적 인생관과 세계관에 충실하며, 그에 대한 깊은 탐구를 이끌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을 말하고 주장하는 것은 이전에는 없던 어떤 새로운 것을 말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전혀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에 도리에 충실한 사고를 깊이 있게 폭 넓게 하자는 것, 또는 그렇게 해 오던 바를 좀더 명확히 언표하고 외현적으로 드러내 보자고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외현화하는 것을 때때로 "세계관을 가진다"고 표현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논의를 같이 해 온 분들은 이런 표현은 그리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것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외현화하지 않아도 이미 그 세계관은 암묵리에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손봉호 교수님께서는 "세계관이나 그 배경을 이루는 종교적 신앙이 항상 의식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의식되지 않은 세계관이 구체적인 삶과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도 표현하신 일이 있다. 의식 있는 신실한 기독교인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독교 세계관을 명확히 외현적으로 표현하도록 하려는 것인가? 이 문제를 다음절에서 다루기로 하자.
2. 기독교 세계관의 특징들: 그 관점의 특성들을 중심으로 앞으로 우리가 충실히 드러내고, 표현하며, 외현화하려고 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과연 어떤 특징을 가질 것인가? 이것도 여러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제시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세계관을 가능하게 하는 기독교적 관점이 과연 무엇이고, 그런 관점의 특성들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다음 세 가지 특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중생자의 영적인 세계관 첫째로, 기독교 세계관은 중생한 사람들의 영적인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세계관을 외현화한 것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은 중생하지 아니한 자들의 다양한 세계관들과 대립적이고, 반립적인(anti-thetical) 세계관인 것이다. 그 둘 사이에는 타협과 절충의 여지가 전혀 없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비기독교적 세계관들이 어떤 점에서 함께 기독교 세계관에 반립하여 서 있으며, 어떤 점에서 각기 다른가 하는 문제에 아주 민감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다른 것들을 그저 뭉둥 그려 동일시하는 실수와 그렇게 한다는 비판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기독교적 세계관을 깊이 탐구하고 기독교적 세계관과 비교하는 일이 언젠가는 있어야만 한다. 일단 여기서는 다른 모든 세계관들과 기독교 세계관을 구별하는 하나의 요소로 기독교 세계관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의 입장을 지니는 데 비해서, 모든 다른 세계관들은 결국 자연주의(naturalism)나 반초자연주의(anti-supernaturalism)의 입장을 지닌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여기서 형식적으로는 기독교적이려고 하되 실질적으로는 기독교적이지 않은 입장들이 과연 어떤 것인지가 잘 드러날 수 있다. 형식적으로 기독교적이려고 하는 입장들은 대개 초월과 초자연을 말하고 인정하기는 하지만 대개는 그 초월과 초자연이 참된 초월과 초자연이 아니든지, 아니면 자연 내에 있는 초월이나 초자연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적 입장만이 참된 초자연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정한 초자연주의는 그저 자연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을 인정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고,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인정하는 성경의 하나님과 그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영적인 세계관이기도 한 것이다. 중생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또한 중생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지적 변화도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발생하며, 이 세계관에 따라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성령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것이기에 중생자의 세계관은 영적인 세계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기원과 진술 과정과 그 결과가 모두 다 성령 안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관점은 근본적으로 영적 관점(spiritual perspective)이다. 2) 성경적 세계관 중생자의 영적 관점은 결국 이 세상을 성경의 빛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도록 한다. 월털스토르프가 잘 표현한 바와 같이 "진정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경의 세계관을 채택하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적 관점(bibilical perspective)을 가지고 세계를 보는 성경적 세계관일 수밖에 없다. 월터스가 말하는 대로 "우리의 세계관은 성경에 의해서 형성되고 점검되어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성경적 근거에 의해서 형성된 세계관을 가져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성경만을 보거나 그 자료만을 사용해서 세계관을 구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과 이 세상에 주어진 하나님의 일반 계시 모두를 다 중시하며, 다 사용하여 그들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작업을 할 때에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성경이 제시하는 관점을 가지고서 이 세상의 일반 계시를 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 계시의 빛 비취임을 받은 사람만이 일반 계시를 비로소 제대로 보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성경적 관점(biblical perspective)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점이 진정으로 성경적인 관점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인지를 분명히 해야만 한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인간의 최고 지혜를 집대성한 책으로 여기면서 이렇게 이해한 성경에 근거해서 그의 세계관을 구성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적 세계관도 아니고, 기독교 세계관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어떤 절단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성경적 세계관이 제대로 된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contain)는 구자유주의(old-liberalism)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진정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은 철저히 인간의 말이지만 성령께서 역사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become)고 하는 바르트주의의 입장에 서서 성경의 관점을 말하는 것은 과연 성경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이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내적 증거가 있을 때에 우리가 이 객관적 하나님의 말씀을 주체적으로도 받아들이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성경을 제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성경이 객관적으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은 성경에 대한 역사적 비평(historical criticism)과 이를 포용하는 모든 비평 이론들과 성경에 대한 그런 접근들을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후에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작업할 때에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지가 여기서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적 관점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무오한 성경에 근거해서 세상을 보는 이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피조계로 보며, 그 피조계가 일정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왔다고 본다. 피조된 이 세상의 역사적 과정 가운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피조계의 타락과 구속이다. 그런데 그 구속도 역사적 과정을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적 세계관은 구조적으로는 역사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결국 성경적 관점은 구속사적 관점(redemptive historical perspective)이 되는 것이다. 3) 신국적 세계관 그런데 성경이 제시하는 구속사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즉 '하늘나라'[天國, kingdom of heaven])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과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때를 종말(終末, eschaton)로 여기던 히브리적 관점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하였을 때부터,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시며 메시야적 사역을 하실 때부터가 '종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에서는 신약 성도들의 관점은 결국 이런 의미에서의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종말이 임하여 왔다는 의미에서의) 종말론적 관점(eschatological perspective)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의 셰계관도 종말론적 세계관인 것이다. 시기적 특징을 밝혀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독교적 관점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그 종말의 시기에 이미 임하여 왔고, 그러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극치에 이를 그 하나님 나라 중심의 관점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제 모든 것을 신국적(神國的)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의 판단 기준은 신국의 가치이고, 그의 모든 것이 천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4. 기독교 세계관의 기본적 구조--그 역사적 성격 우리는 이미 기독교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역사적 세계관이고, 따라서 구속사적 관점(redemptive historical perspective)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것이라는 것을 말했다. 이것은 거듭 강조되어야 하니, 기독교 세계관의 기본 구조가 역사적 과정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과정의 내용은 후에 기독교 세계관을 구성하는 일에 있어서 좀더 상세히 설명되면서 이 틀에 따라서 세계에 대한 이해가 제시될 것이다. 우선 이 역사적 과정을 간단히 더듬어 봄으로써 기독교 세계관의 기본 구조와 틀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창조(Creation)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에 의해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창조 사실은 기독교 세계관의 근본적 기초이다. 이 세상이 그저 있게 되었다거나, 우연히 있게 되었다고 하는 이들은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창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는 좀더 조심스럽게 물어져야할 질문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역사적 창조(historical creation)를 받아들여야 성경적 의미의 창조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에 창조란 그저 이 세상이 여기 있음에 대한 신앙적, 신학적 의미를 표현하는 말일뿐이라고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성경적 의미의 창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일 것이다. 그에게는 창조가 개념이나 의미일 뿐 전혀 역사적 사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창조의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이 세계가 창세기의 창조 기사가 기록하고 있듯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창조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위에서 성경적 관점에 대해서 말하면서 어떤 성경관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선결적인 문제라고 말한 이유의 한 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창세기 기사에 대한 역사 비평과 문학적 비평을 용인하는 입장에서 창조를 받아들이는 이는 과연 성경적 세계관의 토대인 창조를 받아들인 것일까? 필자에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서도 "아니오"라고 말하는 입장을 견지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간 가운데서는 이 세계가 창조되는 것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때문에 창조는 역사의 한 부분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태도가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계시하셨다면 그것까지를 역사 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선진들도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는 것이다"(히 11:2, 3). 그러므로 역사적 창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 어거스틴의 말대로 창조와 함께 시작된 "시간과 함께 하는"(cum tempore) 창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창조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2) 타락(Fall) 따라서 우리는 타락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야 한다. 즉, 역사적 타락(historical fall)을 믿지 않는 이는 실질적으로 타락을 믿는 이로 여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과 같은 시간, 공간 내에서 오래 전의 역사의 어느 순간에 인간의 타락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타락이 없이 창세기 3 장의 이야기는 그저 모든 사람에게 일어안 일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나 신화적 표현이라고 보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의 두 번째 구성 요소를 상실한 것이다. 또 인간의 타락은 사실 이 시공간 내에서 일어 난 것이 아니라 영원에서 영혼의 타락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도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3 장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적 타락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 사실성은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온 인류의 타락이 일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역사적 타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지로 펠라기우스(Pelagius)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창세기 3 장의 역사성은 받아들이면서도 그로 말미암아 인간성 전반의 타락(fall)이 일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이 다 노력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 있으며, 그렇게 자신들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서 구원에 이른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펠라기우스주의는 이미 오래 전에 정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는 계속해서 인간의 온전한 (전적인) 타락을 믿지 않고,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인간에게 남아 있는 힘을 이용해서 최선을 다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계속 나타난 것이다. 이는 온전한 의미의 타락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므로 온전한 기독교 세계관의 한 요소를 불분명하게 하는 입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구속(Redemption) 그처럼 "죄와 허물로 죽은"(엡 2:1) 우리를 영적으로 다시 살리려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데,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서 이루어진 "구속"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신약 성경이 기록해 주고 있는 대로 이 세상을 사시다가, 성경대로 죽으셔서, 성경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믿는 일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이 삶과 죽음과 부활, 승천이 결국 우리의 구속을 이루는 메시아적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성경대로 믿는 것이 구속을 믿는 것이다. 이 구속은 결국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로 도입해 들이신 '하나님 나라"[天國]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는 사건인 것이다. 4) 극치(Consummation)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그 "하나님 나라"[天國]는 예수님의 재림에서야 그 나라의 극치에 이르게 된다. 그 때까지는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 나라"[天國]가 성장해 가고 그 영향력을 온 땅에 미쳐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나라를 가져오실 분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시적이고, 인격적이며, 물리적인 재림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재림이 하나님 나라를 극치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목적을 종국적으로 이룰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은 이런 과정을 걸쳐서 극치에 이를 하나님의 나라, 피조계의 미래를 바라며 이를 중심으로 한 세계 이해를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5. 결론 기독교 세계관이 이러한 특성과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살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1) 이 세계관의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내는 것과 (2) 이런 세계관에 근거한 각 학문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의 제시와 그 실천, 그리고 (3) 이런 세계관에 근거한 활동과 삶일 것이다. 이 세 가지 과제 가운데서 이 번에는 첫 번째 일(즉, 구체적인 기독교 세계관의 형상을 살피는 일)을 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이미 우리가 위에서 인용한 바 있는 여러 책에서 시도된 일이다. 그러므로 다시 우리가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무엇이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구체적 정황 가운데서 우리가 교재로 사용할 만한 기독교 세계관 책의 발간을 위해서 일종의 재정리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식에서 다시 이 어리석은 일을 감행한다. 이 일에는 우리의 입장을 정합성 있게 드러내는 것과 우리와 다른 세계관들과 비교하는 일이 포함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중의 첫 번째 것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일을 하기로 한다. 때때로 다른 입장들과의 비교가 나타나기는 할 것이나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입장을 잘 제시하는 식으로만 하기로 한다. 왜냐 하면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먼저 우리의 입장을 잘 정리하고 난 후에 다른 세계관의 입장과 비교하는 것이 독서나 강좌를 통해서 기독교 세계관을 명확히 하려는 이들에게 비교적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정리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소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기독교 세계관들" 가운데서 우리는 어떤 세계관을 우리의 "기독교 세계관"으로 제시하고 나아가야 하는 지가 비교적 현저하게 드러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제시할 입장은 결국 이원론적 세계관들과 대조되는 통합적 전망의 개혁주의적 세계관(Reformational Worldview)일 것이다. 즉, 우리의 이 정리 작업은 이 개혁주의적 세계관이 구체적으로는 어떤 방향을 추구하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이 될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제시하는 개혁주의적 세계관은 무오한 것이거나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항상 성경과 이에 근거한 일반 계시를 더욱 깊고 폭 넓게 연구한 결과에 의해서 수정될 수 있는 개방성을 지닌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영감되지 않은 인간의 모든 활동은 항상 오류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항상 개방성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월쉬와 미들톤의 말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일 어떤 한 세계관이 문화를 지배하게 되면, 그 세계관은 다른 시각들이 그 사회 속에서 서로 겨룰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타당한지를 의심할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전체주의적 성격을 갖는 그런 시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시각이 언제나 제한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세계관은 언제나 - 다른 세계관에 의해서라 할지라도 - 수정과 순화를 받아들일 태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제시하는 기독교 세계관이 항상 성경에 대한 더 바르고 깊은 연구와 이에 근거한 일반 계시에 대한 연구의 빛에서 수정되어 점점 더 성경적인 세계관이 되어 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개혁파 신학과 교회에 대해 하던 말을 변용해서 개혁된 세계관은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월터스가 말하는 대로 "지속적인 개혁이란 성경에 의해 늘 개혁되고 (행 17:11; 롬 12:2을 보라) 전통을 무반성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개혁적 관점에 의해서 후에 좀더 온전하게 개혁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하는 이 정리 작업을 한 후에 다른 세계관들과의 본격적인 비교를 위한 작업이 뒤따르면 이미 정리된 우리의 세계관을 더욱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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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인물들과 작품들
- William Lane Craig and J. P. Moreland. Philosophical Foundations for a Christian Worldview. IVP Academic (2003).
- Gordon H. Clark. A Christian View of Men and Things: An Introduction to Philosophy. Grand Rapids, MI: Eerdmans (1951); reprint, Grand Rapids, MI: Baker (1981).
- Herman Dooyeweerd. A New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Jordan Station, Ont.: Paideia Press (1984) online summary with excerpts
- Carl F.H. Henry.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Waco, TX: Word (1976).
-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Grand Rapids, MI: Eerdmans (1931) online version
- James Orr. The Christian View of God and the World.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893) online version
- Francis Schaeffer. The Complete Works of Francis A. Schaeffer: A Christian Worldview. Wheaton, IL: Crossway (19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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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 William Lane Craig and J. P. Moreland. Philosophical Foundations for a Christian Worldview. IVP Academic (2003).
- Gordon H. Clark. A Christian View of Men and Things: An Introduction to Philosophy. Grand Rapids, MI: Eerdmans (1951); reprint, Grand Rapids, MI: Baker (1981).
- Herman Dooyeweerd. A New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Jordan Station, Ont.: Paideia Press (1984) online summary with excerpts
- Carl F.H. Henry.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Waco, TX: Word (1976).
-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Grand Rapids, MI: Eerdmans (1931) online version
- James Orr. The Christian View of God and the World.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893) online version
- Francis Schaeffer. The Complete Works of Francis A. Schaeffer: A Christian Worldview. Wheaton, IL: Crossway (1982).[9]
- Jürgen Habermas,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ume II (1981) - see sections on Worldviews and Worldpictures
- Arthur F. Holmes, All Truth Is God's Truth. Grand Rapids, MI: Eerdmans (1977).
- 양승훈, 기독교적 세계관, 서울: CUP (1999)
- David Naugle, Worldview: A History of the Concept. Grand Rapids, MI:Eerdmans (2002) on line table of contents
- Nancy Pearcey, Total Truth: Liberating Christianity from its Cultural Captivity. Wheaton, IL: Crossway Books (2004) on line table of contents
- Nancy Pearcey, Saving Leonardo: A Call to Resist the Secular Assault on Mind, Morals, and Meaning Broadman and Homan Publishing Group (2010), ISBN 978-1-4336-6927-9
- Quine, David Answers for Difficult Days: Surviving the Storm of Secularism. Cornerstone Curriculum Project (1998, 2014)
- James Sire, The Universe Next Door: A Basic Worldview Catalog.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7) on line table of contents
- Ninian Smart, Worldviews: Crosscultural Explorations of Human Belief (New Jersey: Prentice Hall, 2000)
- Albert M. Wolters, Creation Regained: Biblical Basics For A Reformational Worldview. Grand Rapids, MI: Eerdmans (1985).
- Leslie Stevenson, David L. Haberman, "Ten Theories of Human Nature"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 book examines each one of four points—the nature of the universe, the nature of humanity, the diagnosis of the ills of humanity, and the proposed cure for these problems. Good introduction to where main worldviews originate and how to begin to think about them in context of human nature.
- Graham Cole, "Christians have a Worldview?[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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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외부 링크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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