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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
경상북도 경주시의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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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祗林寺)는 경상북도 경주시의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신라 때 인도 승려인 광유(光有)가 창건하고 이름은 임정사(林井寺)라고 했다. 643년에 원효가 중창한 뒤 기림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지는데,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한 곳 가운데 하나인 기원정사(祇園精舍, 기수급고독원)에서 유래한 이름이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서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로 받았다는 전설이 실려 있는데, 이때 신문왕이 귀환하는 도중에 기림사 서쪽에서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창건 연대는 적어도 신문왕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지은 감은사의 터나 문무왕릉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고려 시기에 기림사가 존재했던 사실은 《삼국유사》 탑상 전후소장사리조와 낙산사이대성관음정취조신조 등에 기림사 주지로 가지산파의 승려 각유(覺猷)에 관한 내용이 전해지는 데서 알 수 있다.
전자는 고려 예종 때 전래한 불아(佛牙)가 1232년 강화로 천도할 때 분실되었다가 다시 봉안되는 과정, 후자는 고종 23년(1236년) 4월 왕의 원당인 신효사(神孝寺)의 승려 온광(蘊光)이 부처의 어금니에 절을 올리기를 청하여 왕에게 아뢰니 왕은 내신을 시켜 궁중을 두루 찾아보았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 어불당(御佛堂)과 경령전(景靈殿) 수직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익명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시원전(十員殿)에 모시고 신효사 상방(上房) 온광을 청하여 재(齋)를 올리게 하였다는(그때 내전에서 향을 사르고 기도하던 역할을 각유가 맡고 있었다) 사실로, 모두 각유 자신이 듣거나 혹은 현장에 있으면서 본 것을 일연에게 들려 준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신라 의상이 낙산사(洛山寺)에 간직해 두었던 보 주(寶珠)가 몽고군의 침입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자 고종 45년(1258년) 10월 본업(本業)의 노숙(老宿) 기림사 주지 대선사 각유가 왕실에서 그것을 직접 간직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에 따라 야별초(夜別抄)를 보내 궁중에 모셨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충숙왕 복위 5년(1336년) 기림사의 주지(住持)는 대선사(大禪師) 선지(善之)였다. 이때 이루어진 《감지은자 대방광불화엄경》권제60 사경발문에서 알 수 있다. 충혜왕 복위 3년(1342년)에 세워진 자정국존(慈淨國尊) 미수(彌授)의 비명에는 미수의 문인 314명 중에 기림사 주지를 맡았던 원지대사(圓智大師) 행영(行英)이 있다. 14세기 전반기에 기림사 주지 두 명을 확인할 수 있다.
14세기 중후엽에 기림사가 존재했던 사실은 경주부윤으로 도임한 이달충(李達衷)[1]이 남긴 시[2] 내용에 '기림사에서 부처를 배 알하고 반월성의 관사로 돌아올 때'라는 구절이 있어서, 이달충은 경주부윤으로 도임하여 기림사에 예불하고 이 시를 지었다. 기림사가 몽골 침공이나 일본 원정으로 인한 부역 동원 등의 상황에서도 유지되어 경주부윤이 방문하여 예불할 정도의 위상을 가진 고찰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세종 때의 선교양종으로의 불교 종파 통폐합 이후 기림사는 선종 18사의 하나로 진주의 단속사와 함께 경상도에 위치한 선종 사원으로 그 위상을 드러냈다. 교종 18사에는 경상도 사원으로 해인사(海印寺), 견암사(見巖寺)만 언급되어 있는데, 경상도 지역 선교 양종 도합 36개 사찰 가운데 4개소만 사원전과 거승수(居僧數)가 인정되었고, 그 4개소 가운데 하나에 기림사가 들었다. 기림사는 속전(屬田)이 100결인데 50결이 더 추가되었고, 거승은 70명이었다. 고려 시기 대선사의 승계를 소지한 승려가 주지하는 사원의 위상이 계속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는 전략적 요충지라 승병 운동의 중심지였다. 조선 철종 14년인 1863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한 건물이 남아 있다. 보물 415호인 건칠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소조비로자나삼존불, 기림사 삼층석탑, 목탑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불전 양식을 볼 수 있는 대적광전, 김시습의 사당인 매월당사 등을 보유하고 있다.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문적과 어필이 다수 남아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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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 보물 제415호 -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 보물 제833호 -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 보물 제958호 -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 보물 제959호 -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전적
- 보물 제1611호 - 경주 기림사 비로자나삼불회도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 경주 기림사 삼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4호 - 경주 기림사 응진전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1호 - 경주 기림사 진남루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2호 - 경주 기림사 약사전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1호 - 경주 기림사 소장 유물 (함월전시관)
교통편
같이 보기
참고 자료
- “기림사 연혁”. 기림사. 2014년 7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7월 3일에 확인함.
- “경주유적지 소개 (감포 지구) > 기림사(祇林寺)”. 신라문화진흥원. 2008년 12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5월 2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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