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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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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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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金健, 1912년 ~ ?)은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한국의 극작가이다. 본명은 김창기(金昌基), 창씨개명한 이름은 마스오 겐조(增雄賢藏)이다.

간략 정보 김건, 작가 정보 ...

일제가 전시체제로 돌입한 1937년 이후에도 주로 대중극작가로 활동하며 일제의 군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식민지 조선 청년들에 대한 징병제를 선전, 전쟁을 독려하는 작품을 집필하였으며, 1939년에는 일제의 선전 영화 '국기 아래 나는 죽으리'에서 주인공 이원하로 출연하기도 하는 등 친일반민족 행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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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경성부 출신이다. 일본에서 연극을 공부한 뒤 귀국하여 1930년대 중반부터 신파극의 작가로 활동했다.

1935년 7월 11일 극단 조선연극사가 공연한 '섬색시'의 대본을 집필하면서 극작을 시작하였다. 이후 상설극장인 동양극장이 개설되자 이 극장의 전속 작가로 채용되었고, 동양극장 전속 극단인 호화선청춘좌가 공연한 대중 연극의 대본을 썼다. 연출부에 안종화, 이서향, 한노단, 홍해성 등이 포진한 동양극장은 많은 인기를 모았고, 김건은 역시 동양극장 전속 작가인 김태진, 박영호, 박진, 송영, 이서구, 이운방, 임선규 등과 함께 대중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관제 연극경연대회가 열렸는데, 김건은 1943년 열린 제2회 대회 출품작으로 식량 증산을 통한 애국을 주제로 삼은 〈신곡제(新穀祭)〉를 집필했다.

광복 후에 좌파 연극인들이 구성한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에 가담[2]하고, 극단 일오극장 공연작 '직공'(하이엘만스 원작, 1945.10.11), 극단 해방극장 공연작 '어머니'(막심 고리끼 원작, 1945.11.7)[3]를 번역 집필하였다. 이듬해 조선연극동맹 소속 극단인 해방극장에서 3.1 기념공연 참가작으로 '꽃과 3.1운동'을 집필하였으나 공연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설립했던 극장 운영에 실패하여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게 되었다.

이후 대중극과 가극에 집중하며 활동하다 6.25 전쟁 개전 초기에 납북되었다.[1]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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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 행적

요약
관점

1941년 2월 결성된 극작가동호회(조선연극협회의 산하조직)에 유치진(회장), 임선규, 함세덕(간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극작가동호회는 "연극협회 배속하에 신체제에 즉응해서 명랑, 건전한 작품을 각 극단에 제공키" 위해 조직되었으며, 일제는 조선연극협회의 소속 극단은 모두가 이 극작가동호회 소속 작가의 작품만을 상연할 수 있도록 강제하여 연극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켰다. 여기서 신체제란 즉 일제의 전시체제를 말한다.

극작가동호회 회원으로서 경성일보에 1941년 2월 25일부터 3월 4일까지 모두 7회에 걸쳐 '나의 신연극론-신체제를 계기로 하여'를 연재하였다. 여기에서 김건은 '신체제'를 계기로 연극인이 '민중의 지도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술과 정치는 하나임을 전제하면서 연극 또한 신체제에 부응하여 일제의 문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1941년 6월 조선연극협회는 유장안을 단장으로 하는 이동극단 제1대를 결성(단장은 유장안이 맡았다)하여 단원을 모집하고 강습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동극단 제1대 시연회 준비 과정에서 김건은 송영, 이서구 등과 함께 각본을 맡았다. 8월 16일 동양극장에서 시연회를 가진 뒤 9월 2일 강화도를 시작으로 지방 순회공연을 떠났다. 이때의 공연 레퍼토리가 바로 김건이 집필한 〈지하의 악수〉(1막)와 〈청년 과학자〉(2막 4장)이다.[4] 이후 이동극단 제1대는 조선연극협회와 조선연극문화협회[주 2] 산하 이동연극대로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1943년 5월 안영일이 단장으로 있는 조선연극문화협회 성지참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참배단은 일본 천황가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신 이세 신궁을 참배한 뒤 도쿄의 여러 극단을 둘러보고 일본 연극협회 주요 인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건은 소감을 밝혔다.

이번 성지참배에 와서 대단히 감명이 깊었던 것은, 이세신궁에 참배했을 때에 궁 참배, 신주를 공경하는 정신, 그러한 것이 내지(일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생활이 되고 있다, 생활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지요. 조선의 경우에는 그것이 의례할까, 행사적인 것으로 흐르고 있다는 폐단이 있습니다. 그 점,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43년 10월 제2회 연극경연대회(1943.9.16~12.26)에 〈신곡제〉(新穀祭)를 출품하였다. 극단 성군(星群)이 공연하고 한노단이 연출한 이 작품은 황무지를 개간하는 영웅적 인물을 내세워 식량 증산을 역설하였고, 작품 말미에서는 등장인물 다케야마가 조선인 등장인물에게 하는 대사로 공군 지원병을 선전하였다.

그런 것이 목적이 아니오. 당신들은 어째서 이렇게 어둡고 우매하오. 지금 우리나라(일본)는 지나(중국)와 싸우고 있소. 지나와 싸우게 되는 그 배후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줄 아시오. 지나를 꼬드기고 있는 것은 영국과 미국이오. 그럼으로 그 미국과 영국을 무찌르기 위해서 지나사변이 일어난 것이오. 그러나 이 앞으로 또 무슨 큰 전쟁을 하게 될는지 모르오. 전쟁을 하려면 병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앞서는 것은 물자 증강이오. 물자는 즉 국력이오. 증산은 전력강화요. 그 중에도 식량 증산은 가장 중요한 과목인 줄 아오. (중략) 이런 전시(戰時)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만큼 안온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대체 누구의 은혜요. (중략) 족보나 뒤지며 양반 타령을 하는 동안에 단 한 톨의 쌀이라도 더 거둬서 바칠 생각을 해 보시오. 눈을 뜨고 좀 깨달으시오.

이 연극경연대회는 "대동아전쟁 완수하에 있어서 내선일체의 강화 정진, 일본정신의 발양, 전쟁의식의 고무 등과 아울러 연극문화의 앙양을 기하기 위하여" 조선총독부 정보과, 국민총력조선연맹, 경성일보사, 매일신보사의 지원하에서 열렸던 조선연극문화협회의 핵심이기도 하였다. 또한 이 제2회 대회 기간 동안 조선총독부 정보과는 '생산 확충과 징병제도 또는 육해군 지원병 제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일본 정신을 강조한 예술적 작품'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일어극(일본어 연극) 상연을 의무화하였다.

1944년 5월 16일 반도가극단이 공연한 〈여성의 길〉(가극, 5경)과 1944년 11월 22일에 극단 동일창극단에서 공연한 〈김유신〉, 30일에 극단 황금좌가 공연한 〈30년〉(3막 4장)을 집필하였다. 여성의 길은 조선연극문화협회 이사를 맡고 있던 서항석이면상이 각각 연출과 작곡을 맡았으며, 〈김유신〉은 작가인 김건 자신이 총독부에 제출하는 대본에서 밝힌 작의(집필 의도)에서 "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국민의 전의(戰意)를 고양시키기 위하여, 조선 역사에서 부모에게는 효, 임금에게는 충, 자녀에게는 교육의 본보기가 되는 김유신을 소환하여 연극을 통하여 조명한다"고 하였으며, 서막(7~10장)의 대사에서 그러한 의도는 더욱 두드러진다.

일동 대표.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 잠간 말슴 드리고저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먼저 잘 아시는 바 가치 戰局을 마츰내 決戰 段階에 직면하고 있는 이때 우리 半島 同胞에게도 徵兵制 實施의 光榮스러운 분부를 내리시와 這間 우리 半島에서도 만흔 壯丁들이 陛下의 干城으로 勇敢 出陣하야 만흔 活動을 하고 있습니다만은 아직도 그건 만으로는 皇恩의 萬分之一도 報答하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의 동일창극단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저 유명한 신라의 명장 김유신 공의 사적을 들추어 공이 과거에 얼마나 忠誠된 길을 거럿는가-, 또는 자식으로서 어버이로서- 그뿐만 아니라 武士로서 얼마나 아름다운 길을 걸엇는가-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이 演劇을 通하야 가치 배호고저 하는 바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國家에 忠誠된 사람은 다- 똑같은 길을 거럿고 더욱이 武士-요새말로 하면 軍人이라는 것은 언제나 自己 一身과 自己의 家庭은 第二의 問題로 압스는 것은 國家를 爲하야 몸을 밧친다는 一念과 丹誠이 잇섯슬 뿐입니다. 아들을 戰地로 보내신 父母, 兄弟를 戰地로 보내신 兄弟, 또는 男便을 戰地로 보내신 안해 되시는 분은 오늘밤 演劇을 보신 다음 皇國臣民된 자랑과 義務를 가치 銘心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入營을 앞두신 靑年 여러분들은 우리에게는 金庾信 公의 忠誠된 피가 흘으고 花郞의 精神이 아직도 새롭다는 것을 잇지 마시고 公의 忠孝를 본바드시어 半島 同胞의 意氣와 皇帝 陛下께 향한 충절을 후세에 빗내주시기 깊이 ″ 바라는 바임니다.

〈30년〉은 집필 시점에서 30년 전인 1914년 인천을 배경으로 일확천금의 헛된 꿈으로 조선인 노동자를 유혹하여 이민선에 태워 끌고 간 미국의 '만행'을 규탄한 작품으로 신고송이 연출을 맡고 강호가 장치를 맡았다.

이런 경력으로 인해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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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일제의 전시 체제를 미화, 옹호하였던 것을 논외로 할 경우 아기자기한 희극성과 대중적인 멜로성이 특징이었다고 평가된다.

  • 〈박〉 - 일본어로 집필되었으며, 조선의 조혼 풍속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 〈쌍둥이 행진곡〉(희극좌, 1936년)
  • 〈장한몽〉(청춘좌, 1940.3.23)
  • 〈김옥균전〉(1940.4.30)
  • 〈성종이 울릴 때〉(청춘좌, 1941.1.7)
  • 〈불국사 비화〉(청춘좌, 1941.6.30)
  • 〈남아일대기〉(청춘좌, 1941.8.13)
  • 〈춘향전〉(청춘좌, 1942.9.20)
  • 〈과수원의 전설〉(성군, 1942.11.5)
  • 〈순애보〉(성군, 1943.2.5)
  • 〈신곡제〉(제2회 연극경연대회 출품작, 1943.10)
  • 〈여성의 길〉(반도가극단, 1944.5.16)
  • 김유신전〉(동일창극단, 1944.11.22)
  • 〈30년〉(황금좌, 1944.11.30)
  • 〈백마〉(황금좌, 1945.4.12)
  • 〈눈물의 38선〉

같이 보기

참고 자료

  • 김건 외 (이재명 외 엮음) (2004년 10월 15일). 김건 편. 해방전 일문 희곡집 1940-1945. 서울: 평민사. ISBN 8971154292.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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