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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력

가락국 왕족출신의 신라의 장군 가락국의 마지막왕인 구형왕의 차남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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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력(金武力, 518년~579년)은 금관국(금관가야)의 왕족이자,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眞興王) 때의 장군이다.

간략 정보 출생일, 사망일 ...

아버지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할 때 아버지를 따라 신라의 진골에 편입되었으며, 관산성 전투(554년)에서 백제 성왕(聖王)의 목을 베는 전공을 올렸다. 관직은 각간에 이르렀다.

신라의 명장이자 공신이었던 김유신의 친할아버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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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532년 9월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하여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554년 백제의 성명왕이 대가야, 왜국과 연합하여 신라 관산성(管山城:충북 옥천)을 공격하였을 때, 김무력은 신주군주(新主軍主)를 맡고 있었다.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가야, 왜를 끌어들여 고구려에게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551년에 수복하였으나, 신라에서 백제를 배반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신주를 설치하고 김무력을 군주로 임명하였다.

관산성에서는 신라의 군주 우덕(于德), 탐지 등이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백제군의 공격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성이 함락되었는데, 신주군주로 있던 무력이 자신이 거느린 병력을 이끌고 출정하였고, 성명왕과 그를 따르던 백제의 좌평 네 명을 죽였다.

관산성 전투에서의 전공을 계기로 무력은 신라 안에서 무장으로써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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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지산리 영취산 능선 아래에 김무력의 무덤이라 전하는 무덤이 있으며, 해마다 10월에 김해 김씨 문중에서 김무력의 시제(時祭)를 올린다.

김무력 묘 도굴 사건

1999년에 두 차례에 걸쳐 그의 무덤은 도굴당했고, 2007년에도 무덤이 도굴당하였다. 최초 도굴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해방 후 양산지역의 기관장으로 온 김해 김씨 후손이 가락국 왕손임을 기리기 위해 비석에 '왕릉'이라고 표기하면서 도굴이 잦아졌다'고 한다.

종친회 측은 99년 2차 도굴이 되자 '가락국 왕자 신라 각간 김무력 공 지묘'로 비석을 고쳤으나, 2007년 4월 중순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취산 기슭에 위치한 김 공의 봉분 정상 부분이 파헤쳐진 뒤 다시 메워진 사실이 5월 3일에 문중 인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김무력묘 정상에서 왼쪽 부분의 잔디가 가로 2m 세로 1m로 반듯하게 잘라진 뒤 원래대로 덮여 있으며 묘의 왼쪽 변두리 소나무 근처에는 미처 되메우지 못한 흙과 숯덩이들이 버려져 있는 등 전문 도굴꾼의 소행으로 짐작되었으나, 범인은 끝내 잡지 못했다.

종친회 측은 '지난 99년 2차 도굴 사건 때 부장품이 없어진 것으로 확인돼 이번 도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나 시청 등 관계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종친회 양산지회 사무국장(당시) 김종완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굴꾼에 의해 세 번째 묘소가 파헤쳐져 조상을 볼 면목이 없다"며 "사적지 지정 등 문화재 당국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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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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