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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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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지(金保之, ? - ?)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정치인이다. 평안도찰방, 길주판관(吉州 判官), 충청도도사(忠淸道都事)를 거쳐 세조좌익원종공신(左翼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조선후기의 문신 김상로, 김재로, 김약로, 김치인, 김종수 등과 독립운동가 김규식의 방계 조상이다.[1] 본관은 청풍이다.

생애

판봉상시사 김중방의 손자이자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낸 김관(金灌)의 아들이다.

일찍이 관직에 올라 진무(鎭撫)를 역임하였다.[2] 경기도충청도 경계선 연로에 도둑이 나타나 밤이면 원우(院宇)에 들어가서 사람의 재물을 겁탈하니, 1436년(세종 18년) 4월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장력이 있고 용기가 있는 군사 30여 명을 인솔하고 가서 체포하게 하였다.[2]

이후 평안도찰방(平安道察訪)을 거쳐 1441년 왕명을 받고 길주 판관(吉州 判官)으로 부임하였다. 세종대왕은 친히 그를 인견하여 “길주는 경계가 북방과 연접하여 방어에 가장 긴요한 곳이니, 가거든 마음과 힘을 다하여 내 뜻에 부응하게 하라.[3]”고 명하였다. 충청도도사(忠淸道都事) 등을 거쳐 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1450년(문종 1) 문종 즉위 후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겸임하였다.[4] 그러나 세종대왕의 국상(國喪) 중에 한 기생을 사랑하였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음탕 방종하여 행검(行檢)이 없어서 충청도 도사가 되어 국상의 졸곡(卒哭) 전에 청주(淸州)의 기생을 지나치게 사랑했으며, 또 청렴하지 못하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이때에 와서 대관(臺官)에 임명하니, 뭇사람의 평판이 크게 놀랍게 여겼다.[4]'한다. 그해 사직(司直)을 지냈다.

그러나 세종대왕 국상 중에 기생을 가까이한게 문제되어 1451년 탄핵을 받기도 했다.[5]

이후 고사(庫使)로 재직 중[6], 세조 즉위 후 좌익원종공신(左翼原從功臣)에 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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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

안종례안당의 종증조부이자 안구의 숙부이다.

  • 할아버지 : 김중방, 판봉상시사
  • 아버지 : 김관(金灌), 호조참의 역임
    •  : 김흔지(金俒之)
    • 동생 : 김의지(金儀之)
    • 동생 : 김억지(金億之)
  • 부인 : 순흥 안씨, 안종례(安從禮)의 딸
    • 아들 : 김순동(金順仝)
    • 아들 : 김한동(金漢仝)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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