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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유적
경상북도 김해시의 청동기 시대 유적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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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유적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호 김해회현리패총으로 지정[2]되었으나, 2001년 2월 5일 김해패총(金海貝塚)과 금관가야의 집단 취락지인 봉황대(경남문화재자료 제87호)를 합쳐 김해봉황동유적으로 확대지정 및 명칭변경[3]되었다가, 이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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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패총
1907년(융희 1년) 이마니시 류의 조사 이후 1934~1935년에 걸쳐 일본 학자가 매장지를 조사 발굴(발굴 당시에는 김해읍 회현리(會峴里))하여, 조개더미[4]와 같은 성격이 드러났다. 봉황대 언덕 근처에 서로 시기가 다른 회현리 조개더미와 다양한 무덤유적이 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붉은 토기(적색토기, 赤色土器) · 회색 토기·가야 토기의 파편과 철부(鐵斧)·철도자(鐵刀子, 쇠 손칼), 뼈·뿔도구, 가락바퀴(방추차), 불탄쌀(탄화미), 동물뼈 들이 있다. 사슴뿔이나 뼈를 가공해 만든 칼자루가 많다. 불탄쌀은 고대의 쌀과 농경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중국 신(新)나라의 왕망이 기원전 14년에 만든 화폐, 화천(貨泉) 이 출토되었는데, 이로 인해 이 유적이 형성된 연대가 철기 시대라는 것과 중국과의 왕래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고인돌·상식석관(箱式石棺) · 항아리에 뼈를 넣었던 독무덤(옹관, 甕棺)·세형동검(細形銅劍)·마제석촉(磨製石鏃) 등이 발굴되었다. 이 조개더미는 금석 병용기 말부터 삼국 고분기(三國古墳期)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무덤들은 청동기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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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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