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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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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 전한
진나라가 영남을 정복하면서 남해군이 설치되었다. 진나라가 몰락할 무렵 남월 무왕 조타가 남월을 건국하면서 남월의 영토가 됐다. 원정 6년(기원전 111년) 무제가 남월을 병탄하면서 한나라에 속했다.
교지자사부에 속했다.[1]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9,613호, 94,253명이 있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지리지의 내용이다.[2][1] 원연·수화 연간(기원전 8년 무렵)의 현황으로 여겨지며, 총 6현이다. 포수관(圃羞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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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다음 현의 이름을 고쳤다.
후한
7현 101,477호 250,282명을 거느렸다. 후한말 교주자사 주부가 토착민에게 살해당하자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사섭이 친척인 사무(士武)에게 남해태수직을 맡기면서 어느정도 안정화되었다.[3]
오, 진
226년(오 대제 황무 5년), 창오군. 울림군, 고량군과 함께 광주로 분리되었다. 광주가 얼마못가 폐지되면서 다시 교주에 속했다가 263년(오 경제 영안 6년), 광주가 신설되면서 다시 광주에 속하게 되었다. 서진대에는 6현 9,500호를 거느렸다. 331년(함화 6년)에 남해군 동부 사염도위에 속했던 보안, 안회, 흥녕, 해풍, 해안, 흔락의 6현이 동관군이, 420년(원희 2년) 신회군이 신설되면서 군역이 광저우 시 일대로 축소되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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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
10현 8,574호 19,157명을 거느렸다.[6]
남제
유송대 통치했던 현들중 시창현이 다른 군으로 이관되었고 4개 현이 신설되었다.[7]
수
요약
관점
수 문제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주현제가 실시되면서 남해군이 광주(廣州)로 바뀌었고 총관부가 설치되었고 청원군, 수건군, 창락군, 동관군, 신회군이 통폐합되면서 군역이 지금의 광저우 시, 칭위안 시, 사오관 시 일대로 확장되었다. 601년(수 문제 인수 원년) 번주(番州)로 바뀌었다. 대업초기 총관부가 폐지되고 군현제가 실시되면서 남해군으로 바뀌었다. 15현 37,482호를 거느렸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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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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