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질문
타임라인
채팅
관점
니더작센 관구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Remove ads
니더작센 관구(Niedersächsischer Reichskreis)는 신성 로마 제국의 관구이다. 중세의 작센 공국 (베스트팔렌)을 제외한)의 지역을 포함했으며, 오버작센 관구로부터의 차이점을 두기 이전에는 본래 작센 관구(Sächsischer Kreis 또는 Sächsischer Reichskreis)라고 불렸다.

니더작센 관구의 흔치 않게 여러 시대에서 덴마크(홀슈타인), 그레이트브리튼(하노버), 스웨덴(브레멘)의 군주들 모두가 신성 로마 제국의 국가들의 제후였다.
기원
니더작센 관구에 대한 최초 계획은 1438년에 알브레히트 2세에서 비롯됐다. 제국령 작센 관구는 1500년에 공식적으로 만들어졌지만 1512년에 니더작센 관구와 오버작센 관구로 나뉘게 되었다. 이 분리는 1522년에서야 성문화되었으며, 제국 최고 법원에 의한 분리가 완전히 시행되기 전에 시간이 좀 필요했었다. 뿐만 아니라, 오버작센 관구가 먼저 언급되었고, 니더작센 관구 또는 네덜란드 지역은 이후에 이뤄졌다. 니더작센(Niedersachsen)이라는 용어는 1548년에서야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영역
니더작센 관구는 현재의 니더작센주의 최동부 지역, 작센안할트주의 최북부 지역(알트마르크 제외),[1] 메클렌부르크, 홀슈타인 (디트마르센 제외), 함부르크, 브레멘, 추가적으로 브란덴부르크주와 튀링겐주의 작은 지역들이 포함됐었다. 대게 니더작센 관구는 할레, 위터보크와 같은 작은 월경지들로 이뤄진 지속적으로 연결된 영역이였다. 노르트하우젠과 뮐하우젠은 역시도 제국 관구의 부분 외부에 위치했었다. 관구 내부에는 1052년부터 브레멘 대주교국과 동군 연합을 이룬 페르덴 대주교국이 있었다. 샤움부르크와 슈피겔베르크 백국 또한 동군 연합의 일부였으나, 니더작센 관구에 속하지는 않았다.
신성 로마 제국의 몰락 때, 네더작센 관구는 1,240 평방 마일과 2,120,000명의 인구를 지녔었다. 종교에 관해서, 거주민들의 대다수가 개신교도였다. 예외로는 가톨릭 힐데스하임 주교국이 있다.
Remove ads
구조
니더작센 관구의 상당 영역은 벨프 가문이 다스리던 지역으로 이뤄졌었다. 종교 개혁으로 새롭게 개종한 마그데부르크 대주교국은 1513년부터 호엔촐레른가 출신의 관리들의 통치를 받았다. 또한 1648년에 할버슈타트 주교국이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에게 넘어갔다. 종교 개혁후 브레멘 대주교국은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를 받다, 1715년에 벨프 가문에게 넘어갔다. 올덴부르크 공국을 통해, 덴마크의 군주는 제국 관구의 제후가 되었다. 또한 제국 관구의 그들의 소유지를 지녔던 결과로 프로이센, 스웨덴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국을 다스렸던 그레이트브리튼의 군주들 역시도 제국의 제후가 되었다. 제국 전체 중에서, 니더작센 관구는 대부분 외국의 군주들이 다스려졌다. 이에 상관없이 벨프 가문의 니더작센내 관구내에서 강력한 위치는 메클렌부르크 공작들과 덴마크의 군주들에게서 완전한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구성
요약
관점
니더작센 관구는 다음의 국가들로 이뤄졌다:
Remove ads
각주
참고 자료
외부 링크
Wikiwand - on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Remove 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