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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창건사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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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창건사적관(黨創建事蹟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중구역에 위치한 박물관이다.[1][2] 해방산[3] 근처에 있다. 1923년 11월에 완공되어 1970년 10월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원래 이 건물은 평안남도 상품진열소를 거쳐 쵸우지야백화점 평양점이었다가 일제 패망 이후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청사였던 곳이다.

건물의 역사
요약
관점
이 건물은 일제시대에 쵸우지야백화점 평양점이었으며, 대동교 개통과 같은 날인 1923년 11월 30일 평안남도 상품진열소라는 이름으로 남정(南町) 5번지에[4] 준공되었다.[5][6]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당시 조선 총독이 평양에 와서 대동교 도교식(渡橋式)에 참석한 후, 이어서 백화점 낙성식에도 참석하였다.[7] 평안남도 도청에서 건축하고 관리하던 건물이며, 소장도 도청 직원이 맡았다. 당시는 각 도마다 상품진열소나 물산진열소(物産陳列所)가 하나씩 있었다. 건물의 외양은 일본 국회의사당을 본뜬 것으로 축소된 형태이다.[8] 이 건물은 1923년 11월 공표된 「조선총독부 평안남도 고시 제100호 평안남도 상품진열소규칙(朝鮮總督府平安南道吿示第100號平安南道商品陳列所規則)」에 의거하여 운영되었다.[9] 상품전시회를 열면서 판매를 하기도 하고,[10] 미술 전시회 등 각종 전시회 장으로도 이용되었다.[11] 1927년 7월에는 분수대도 세워져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이용되었다.[12]
이후 1937년 9월 15일 평안남도 상품진열소에서 쵸우지야백화점으로 전환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시기부터 노동당 초기 시절까지 당사로 이용되었고, 김일성도 이 건물에서 집무했다. 당시 김일성이 살던 자택도 이 건물에서 서쪽으로 100 m 정도 떨어진 지근 거리에 있었으며,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13][14] 북한에서는 노동당 창건일을 1945년 10월 10일로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이 결성된 날이다. 김정일의 동생이 익사한 곳이 바로 이 건물 앞 분수대로 보이며, 그 후 분수대는 철거되어 지금은 없다.[15] 건물은 6.25때 파괴되었다 복구되었으나 지금의 모습은 최초의 원형과는 조금 차이가 나는 것 같다.
평양 출신 화가 김병기(1916~ )는 일제시대에 상품진열소는 평양에서 미술 작품 전시회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으며, 자신의 부친 김찬영 화백도 여기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하였다. 또 해방 후에는 김일성이 같은 건물의 사무실에서 화가들을 소집하기에 가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하였다.[16]
이 건물은 1970년 10월 새로운 당사를 지으면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당창건기념관'으로 만들어졌으나, 1980년대에 김정일에 의해 '당창건사적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14]
한편 당창건사적관이 일제시대 박정식이라는 평양부호의 소유였으나 해방후 김일성에게 당사로 쓰도록 기증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는데, 이는 잘못 안 것이다.[14][15][17] 또한 북한의 최고재판소장을 지낸 박명철(朴明哲, 1941~ )[18]이 박정식의 아들이라고도 하나, 그는 실제로는 "박정호(朴正鎬) 간첩사건"의 주역으로 1958년 사형 당한 남파간첩 박정호의 아들이다. 박정호는 김일성의 측근이었던 것은 맞으나 이 건물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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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 평안남도 상품진열소(쵸우지야백화점) 완공을 보도한 1923년 11월 29일자 매일신보 기사
- 평안남도 상품진열소의 1935년 사진 : 조선총독부(朝鮮総督府) 사진기록물
- 아래 쪽은 쵸우지야백화점 시절 1938년 모습 : 조선총독부(朝鮮総督府) 사진기록물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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