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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사기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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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사기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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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사기전서(베트남어: Đại Việt Sử ký Toàn Thư / 大越史記全書 다이비엣스키또안트)는 베트남 후 레 왕조(後黎朝) 시기에 편찬된 베트남의 공식 편년체 역사서이다. 후 레 왕조의 군주 성종(聖宗)의 어명 하에 홍득 연간(洪德, 1470년 - 1497년)에 사관 응오씨리엔(베트남어: Ngô Sĩ Liên / 吳士連 오사련)을 중심으로 하여 편찬하였다. 이 책은 기본적인 사료인 대월사기(베트남어: Đại Việt sử ký / 大越史記)를 보완하여 편찬한 것으로, 홍방(베트남어: Hồng Bàng / 鴻龐) 이래의 전설과 사실을 기록하였다. 1797년, 떠이선 왕조(西山朝)의 사관 응오 티 념(베트남어: Ngô Thì Nhậm 또는 Ngô Thời Nhiệm(응오 터이 니엠) / 吳時任 오시임)에 의하여 후 레 왕조 민제(愍帝) 찌에우통(紹統) 3년(1789년) 시기 역사까지 새로 증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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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사기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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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

요약
관점

제1차 편찬

대월사기전서가 언제 만들기 시작하였는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대월사기전서 본기13 성종순황제 본기에 따르면 홍득(洪德) 2년(1471년)에 응오씨리엔(吳士連)을 사관수찬(史官修撰)으로 임명한 기사가 존재한다. 기록으로 볼 때, 최소한 사관수찬 임명 때 이후로 대월사기전서를 편찬하기 시작하였다고 본다. 대월사기전서 이전에 쩐 왕조성종 시기에 국사원감수(國史院監脩) 레반흐우(黎文休) 등이 만든《대월사기(大越史記)》와 저자 미상의《월사략(越史略)》등이 존재하였다. 대월사기와 월사략은 공통적으로 남비엣(南越) 때부터 리 왕조(李朝) 때 까지 기록한 사서였으며, 월사략이 편찬 된 이래로 쩐 왕조 건국 이후가 기록된 역사서가 부재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경 등을 바탕으로 후 레 왕조의 군주 이 나라의 기틀을 잡고자 한 정책 중 하나가 역사서 편찬이다. 대월사기전서를 편찬 할 때 전 왕조에서 만든 대월사기를 기본 틀을 삼아, 기타 역사서 및 야사 등을 모아 편찬하였다. 홍득 10년 정월 26일(율리우스력 1479년 2월 17일)에 외기전서 5권과 본기전서 10권을 포함하여 총 15권을 완성하였다. 역사서에 기록 된 시기는 홍방 시기(기원전 21세기경)부터 후 레 왕조 개창 전(1427년)까지이다. 이 책의 의의는 기존의 남비엣을 기점으로 시작 하는 기존의 역사서에서 홍방 시기와 어우락 시기를 포함시켜 베트남의 역사를 앞당겼으며, 베트남사를 연구하는 사료로서 1차 사료가 되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제2차 편찬

성종(聖宗) 사후에 후 레 왕조의 여러 혼란기가 찾아왔으며, 후 레 왕조막 왕조가 공존하는 남북조 시대 그리고 찐-응우옌 분쟁 등으로 후속 역사서 편찬이 미뤄졌다. 대월사기전서 본기 기사에는 안나오나, 대월사기전서 권수(卷首)의 한 부분이자 서책의 편찬자인 팜꽁쭈(베트남어: Phạm Công Trứ / 范公著 범공저)가 작성한 대월사기속편서(大越史記續編書)에서 본기실록과 본기속편을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속편서의 작성 시기는 까인찌(景治) 3년(1665년) 중추절(仲秋節, 음력 8월 15일) 때이므로, 최소한 후속 역사서가 그 해 음력 8월 이전에는 편찬이 완료된 걸로 보인다. 편찬된 서책의 구성으로는 본기실록 6권에 본기속편 3권으로 구성되어있다. 역사서에 기록 된 시기는 후 레 왕조 개창 전 람선 봉기 시작(1417년)에서 신종(神宗)의 재위기(1662년)까지이다. 역사서의 주요 특징으로는 본기실록 제1권은 본기속편 제10권을 개수한 후, 태조(太祖) 재위기를 합쳐서 본기실록 1권으로 재편찬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기실록 부분의 기록은 어느정도 이상 작성되어있지만, 본기속편 부분의 기록은 외기전서 만큼이나 부실하다. 막당중(莫登庸)의 황위 찬탈 전후에는 기록이 어느정도 존재하나, 후 레 왕조 중흥 이후에 길어진 혼란기에 의하여 그 시기의 기록이 역사학적으로도 적다는 게 특징이다.

제3차 편찬

대월사기전서 속편1 희종 본기와 대월사기전서 권수의 한 부분이자 형부상서(刑部尙書) 레히(베트남어: Lê Hy / 黎僖 여희)가 작성한 대월사기속편서(大越史記續編序)를 참고하자면, 찐호아(正和) 18년(1697년) 11월에 본기속편추가 1권이 완성한 기록이 전해진다. 총괄 편찬자 형부상서 레히 외에도 20여 명의 대신이 편찬에 동참하였다. 역사서에 기록 된 시기는 현종(玄宗)의 재위 원년부터(1663년)부터 희종(熙宗)의 즉위년(1675년)까지이다.

제4차 편찬


자세한 정보 부제, 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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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권수

자세한 정보 제1책, ### ...

외기전서

자세한 정보 제2책, ### ...

본기전서

  • 본기전서 1
자세한 정보 제3책, ### ...
  • 본기전서 2
자세한 정보 제4책, ### ...

본기실록

자세한 정보 제6책, ### ...

본기속편

자세한 정보 제9책, ### ...

속편

자세한 정보 ###, 부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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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신화 ( 락롱꾸언 신화 )

<대월사기전서>에 따르면 신농씨의 3세손 데 밍(vi:Đế Minh, 帝明)이 데 응이를 낳고 나서 남방을 순방하던 중 응우 링(Ngu Linh, 현재의 오령산맥)에 이르렀다. 그는 이 곳에서 무선녀(무선이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록 뚝(Lộc Tục, 祿續)을 낳았다. 록 뚝이 총명하기 그지없어 데 밍은 몹시 사랑하여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록 뚝이 한사코 사양하며 그의 형에게 양보하기를 고집하니, 데 밍은 그렇기에 장남인 데 응이 에게 북방을 다스리게 하고, 차남 록 뚝을 낀 즈엉 브엉(Kinh Duong Vuong, 經陽王)에 봉하여 씩 꾸이(Xich Quy)라고 하는 남방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록 똑은 동 딩 꾸언(Dong Dinh Quan)의 딸 턴 롱(Than Long, 神龍)과 혼인하여 숭 람(Sùng Lãm, 崇纜) 즉, 락 롱 꾸언(Lac Long Quan, 貉龍君)을 낳았다. 숭 람은 데 라이(데 응이의 아들이다)의 아내(개세상 홍왕, 예악미저이 라는 부분이 이 뒤에 나오는데, 이는 세상이 넓고 황량하여 예와 악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혼이 가능함을 서술하는 것이다. 따라서 데 라이의 딸 보다 아내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다.) 어우 꺼(Au Co)와 결혼하여 100명의 남자를 낳았고,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100여개의 을 낳았다고 한다. 그 알에서 100여명의 아들이 나왔는데 이들이 백월족(白越族)의 선조로 알려진다. (오늘 날 베트남인들은 숭 람과 어우 꺼를 자신들의 시조로 여기고 있으며, 자기네를 백월족의 자손이라 생각하고있다.) 어느 날 숭 람이 어우 꺼에게 말하기를 나는 의 자손이요, 당신은 의 자손이라 은 서로 다른 까닭에 합하는 게 실로 어렵지 않겠소라고 하였다. 이들은 즉시 헤어졌는데 어우 꺼는 50여명의 아들을 데리고 산으로 돌아갔고, 숭 람도 나머지 50여명의 아들을 데리고 남쪽에 거주하였는데, 응오 씨 리엔의 주석에 의하면, '남쪽에 거주함은 곧 남해로 돌아간 것이다.' 이 때 이들은 장남을 훙 브엉(Hung Vuong, 雄王)으로 봉하여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이 후의 들은 훙 브엉이라 불리었다.

각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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