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질문
타임라인
채팅
관점

더 퀸

2006년 영화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더 퀸
Remove ads

더 퀸》(영어: The Queen)은 2006년에 개봉한 영국다큐드라마 영화로, 스티븐 프리어스가 감독을, 피터 모건이 각본을 맡았으며, 헬렌 미렌이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2세 역을 연기했다.[3] 영화는 1997년 8월 1일에 사망한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의 사망에 대한 영국의 왕가 반응을 묘사한다. 영화에서 왕가는 다이애나의 사망을 공식적인 왕가 출신의 사망으로 여기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왕가가 공식적으로 조의를 표하길 원하며 일반 대중들의 편을 드는 토니 블레어와 다이애나의 전남편 웨일스 공 찰스의 입장과 대조된다. 여기에 언론, 다이애나의 공식 지위를 다루는 왕실 의례, 공화주의 문제까지 겹쳐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간략 정보 더 퀸The Queen, 감독 ...

마이클 신은 《라이벌》(The Deal, 2003)에서 연기했던 토니 블레어 역을 다시 맡았고, 이후 《특별한 관계》(The Special Relationship, 2010)에도 같은 역으로 재출연했다.

《더 퀸》은 군주제를 향한 영국의 대중 정서가 다시 호감으로 돌아서게 된 반면 토니 블레어 정부는 쇠락하던 시기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평단으로부터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역을 맡은 미렌의 연기가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 제79회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4] 심지어는 엘리자베스 2세 본인까지 미렌의 연기를 찬사하며 버킹엄 궁전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렌은 할리우드 촬영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5]

Remove ads

줄거리

요약
관점

1997년 영국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노동당은 개혁 및 현대화 강령으로 당선된다. 그로부터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파리 알마교 터널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전남편인 찰스 왕세자총리 토니 블레어는 더 이상 왕실 구성원이 아닌 미래 국왕의 어머니에게 어떤 예우를 표해야 합당할지 고민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블레어가 장례식 계획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돌리려고 하자 그가 왕실에도 현대화 공약을 적용하려 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다이애나의 가족인 스펜서가는 장례식을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블레어가 연설에서 다이애나를 “국민의 공주”로 묘사하자 언론이 이 칭호를 채택해 사용한다. 비통한 심경을 분출하는 대중의 모습과 인터뷰가 방송을 타고, 버킹엄 궁전켄징턴 궁전은 헌화가 넘쳐나 정문 입구를 우회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왕실 원로들은 다이애나가 지닌 사회적 의의를 인정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어머니의 사망을 겪은 손자들을 위로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여왕은 밸모럴성에 머물며 휴가를 보낸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왕실의 인기는 폭락하는 반면 블레어는 왕실의 무대응에 항의하는 대중에게 응답하면서 지지율이 상승한다.

왕실을 논란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려고 하는 블레어의 시도는 저항에 부딪힌다. 여왕과 필립 공은 전 국민의 애도를 왕실이 인지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자는 건의에 분개하고, 다이애나에 관한 그 어떤 형태의 추모도 거부한다. 여왕은 이를 언론이 부추긴 대중의 과잉 반응에 굴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웨일스 공과 여왕의 보좌관들은 블레어에게 왕실의 태도를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하라고 격려한다. 영국 전역이 계속 슬픔에 잠겨 있는 사이 블레어는 왕실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려고 애써 보지만 이 시도는 헛수고로 끝난다. 연민을 보이는 블레어는 압도적인 찬사와 흠모를 받는 반면 왕실의 무관심은 국민들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는다.

영국민의 분노가 임계치를 넘어서자 블레어는 여왕이 다이애나의 죽음과 대중의 심경을 공식적으로 인지하기를 거부하여 빚어진 사태를 더 이상 무마할 수 없게 된다. 블레어는 여왕에게 국민의 70%가 그녀의 행동이 군주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여기며 “4명 중 1명”이 군주제 폐지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다. 블레어는 왕실이 버킹엄 궁전에 국기를 조기로 게양하고, 여왕이 조의를 표하고, 국민을 위로하는 내용의 대국민 연설을 할 것을 단호히 주장한다.

여왕은 평생 처음 겪는 국민의 부정적 반응과 블레어의 제안에 의기소침해지는 한편 자신의 통치 기간 동안 세상이 변했음을 깨닫는다. 그녀와 필립 공은 의견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함께 런던으로 돌아간다. 여왕은 마침내 텔레비전 생방송에서 다이애나의 국가적·사회적 의미를 공개적으로 기리며 국민의 고통을 다소 달랜다. 왕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다이애나의 사회장에 참석한다.

다음 회동에서 블레어와 여왕은 지난 회동 이후 발생한 일들, 특히 다이애나의 죽음과 이에 대한 왕실의 조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다. 여왕은 블레어에게 새로운 영국에서 왕실이 취해야 마땅한 행동에 대한 대중의 여론이 변화했듯이 그 역시 급작스럽게 변화한 대중 여론을 맞닥뜨리는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Remove ads

출연진

과거 촬영분 (본인, 크레디트 미기재)

Remove ads

시청 등급

  • 대한민국: 12세 판정가

우리말 녹음

MBC 성우진

각주

외부 링크

Loading related searches...

Wikiwand - on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Remove 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