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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렘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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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렘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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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네덜란드어: De terugkeer van de verloren zoon)는 렘브란트의 유화 작품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이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1668년 그가 사망하기 2년 이내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 성경의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순간을 묘사한 작품으로,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주장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한 유명한 작품이다.[2]

간략 정보 돌아온 탕자, 작가 ...

그림 속 아들은 유산을 낭비하고 빈곤과 절망에 빠진 비참한 상태로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는 회개하며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아버지 집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데, 심지어 아버지의 하인들조차 자신보다 더 나은 처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부드러운 몸짓으로 아들을 맞이하며 자신의 아들로 환영한다. 아버지의 손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동시에 상징하는 듯하다. 왼손은 아들의 어깨에 놓여 더 크고 남성적으로 보이는 반면, 오른손은 더 부드럽고 받아들이는 듯한 몸짓이다.[3]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은 탕자의 형으로, 심판하듯 팔짱을 끼고 있다. 탕자의 비유에서 형은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가 자비를 베푸는 것에 반대한다.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누가복음 15:29–30

이에 아버지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32

렘브란트는 이 비유에 감동받아 1636년 에칭(갤러리 참조)을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수십 년에 걸쳐 이 주제로 다양한 소묘, 에칭, 회화를 제작했다. 이 작품에는 비유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초기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다. 왼쪽 상단에 희미하게 보이는 여인은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으며,[4] 부유함을 암시하는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남자는 재산 고문 또는 세금 징수원일 수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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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돌아온 탕자는 렘브란트 만년의 대가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그의 영성과 용서의 비유적 메시지에 대한 표현은 그의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렘브란트 학자 로젠버그(외)는 이 그림을 "기념비적"이라고 부르며, 렘브란트가

기독교적 자비 개념을 마치 세상에 대한 자신의 영적 증거인 것처럼, 비범한 엄숙함으로 해석한다. [이 그림은] 종교적 분위기와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 다른 모든 바로크 예술가들의 작품을 능가한다. 노년 예술가의 사실주의는 약해지지 않고, 심리적 통찰력과 영적 자각에 의해 강화되었다... 관찰자는 어떤 특별한 사건을 경험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 그림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 부드러움으로 밝혀진 인간 존재의 어둠, 지치고 죄 많은 인류가 하나님의 자비의 피난처로 피신하는 것을 상징한다.[5]

미술사학자 H. W. 잰슨은 탕자가 "렘브란트의 가장 감동적인 그림일 수 있다. 또한 가장 조용한 그림이기도 하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순간. 부드러운 침묵의 분위기가 너무나 가득하여 보는 사람은 이 그룹과 친밀감을 느낀다. 그 유대감은 아마도 초기 어떤 예술 작품보다 이 그림에서 더 강하고 친밀할 것이다."라고 썼다.[6]

네덜란드 성직자 헨리 나우웬 (1932–1996)은 이 그림에 깊이 매료되어 결국 렘브란트의 그림을 바탕으로 《돌아온 탕자: 귀향 이야기》(1992)라는 책을 썼다. 그는 1986년 에르미타시 미술관 방문하여 몇 시간 동안 홀로 그림을 감상했던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비유 속 아버지와 아들들의 역할을 렘브란트의 삶과 관련하여 고찰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렘브란트는 비유 속의 맏아들인 동시에 작은 아들이기도 하다. 생애 마지막 해에 그는 《돌아온 탕자》에서 두 아들을 모두 그렸을 때, 작은 아들의 방황과 맏아들의 상실 모두가 낯설지 않은 삶을 살았다. 둘 다 치유와 용서가 필요했다. 둘 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둘 다 용서하는 아버지의 포옹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와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분명한 것은, 집에 머물러 있던 형이의 회심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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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내용주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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