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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토 루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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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토 루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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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토 루옹고(영어: Roberto Luongo, 영어 발음: /ˈɹɑ.bɚto luˈɒŋɡoʊ/, 1979년 4월 4일~)는 캐나다의 은퇴한 아이스하키 선수로 포지션은 골텐더이다. 현역 시절에 내셔널 하키 리그(NHL)의 뉴욕 아일런더스밴쿠버 커넉스, 플로리다 팬서스 소속으로 19시즌 동안 뛰었다. 2022년에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NHL 올스타 선정 2회(2004년 시즌, 2007년 시즌)이자 리그에서 가장 낮은 경기당 실점률을 기록한 팀을 이끈 공로로 윌리엄 M. 제닝스 트로피를 수상했다.(2011년 시즌, 백업 코리 슈나이더와 함께 수상했다.) 그는 리그 최고의 골텐더에게 주어지는 베지나 트로피(2004, 2007, 2011년), 동료 선수들이 선정한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레스터 B. 피어슨 상(2004년, 2007년), 리그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2007년)를 포함한 여러 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1][2] 루옹고는 NHL 골텐더 최다 출전 경기 (1,044경기)에서 역대 3위, 승리 (489승)에서 역대 4위에 올랐다. 또한 그는 버터플라이 스타일의 골텐더 방식을 사용했다.[3]

간략 정보 로버토 루옹고Roberto Luongo, No. 1(영구결번) – 플로리다 팬서스 ...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루옹고는 퀘벡 메이저 주니어 하키 리그(QMJHL)에서 발도르 포뢰르아카디-배서스트 타이탄 소속으로 뛰면서 2회 연속 프레지던츠 컵을 우승했고, 리그 플레이오프 통산 출전 경기 및 승리 기록을 세웠다.[4] 두 번째 QMJHL 시즌 후, 루옹고는 1997년 NHL 드래프트에서 아일런더스에 전체 4위로 지명되었다. 1999-2000 NHL 시즌에 아일런더스와 그들의 아메리칸 하키 리그(AHL) 산하 팀인 로웰 록 몬스터스에서 프로 데뷔 시즌을 보낸 후, 그는 플로리다 팬서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플로리다에서 5시즌 동안 루옹고는 경기 출전, 승리 및 무실점에서 팀 기록을 세웠지만, 몇 번의 좋은 시즌에도 불구하고 팬서스는 약한 팀으로 남아 루옹고의 초기 팀 재임 기간 동안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2006년 비시즌 동안, 그는 플로리다 팬서스와의 계약 협상이 결렬된 후 밴쿠버 커넉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루옹고는 밴쿠버에서의 첫 시즌에 47승을 거두었고,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리그 MVP)와 베지나 트로피(최고 골텐더) 선정 최종 투표 2위를 차지했다. 커넉스에서의 두 번째 시즌 후, 그는 1947-48 시즌빌 더넌 이후 처음으로 NHL 골텐더로서 주장을 맡았다.[5] 루옹고는 2시즌 동안 그 역할을 수행하다가 2010년 9월 그 자리에서 사임했다.[6] 이어진 2010-11 시즌에 그는 커넉스를 스탠리 컵 결승 7차전까지 이끌었지만 보스턴 브루인스에 패했다. 밴쿠버에서의 8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루옹고는 팀의 역대 최다 승리와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그는 2013-14 시즌 동안 팬서스로 복귀하여 남은 경력을 보냈고, 그 기간 동안 팬서스와 함께 플레이오프에 단 1번 진출했다. 그는 1990년대에 NHL에서 뛰었던 마지막 현역 골텐더였다. 선수 경력 후, 루옹고는 플로리다 팬서스 사무국에 임원으로 합류했으며, 결국 2024년2025년에 연속으로 스탠리 컵 우승을 차지했다.

루옹고는 캐나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주니어 국가대표 시절, 1999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두 번째로 출전한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대회 최우수 골텐더로 선정되었다. 루옹고는 2003년2004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했으며, 2005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또한 마르탱 브로되르의 백업 골텐더로서 2004년 아이스하키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며, 2006년에도 브로되르의 백업 골텐더로서 토리노에서 열린 2006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밴쿠버에서 열린 2010년 동계 올림픽 동안 캐나다의 주전 골텐더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에는 소치에서 열린 201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캐나다 대표팀에 캐리 프라이스의 백업 골텐더로 참가했으며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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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요약
관점

루옹고는 1979년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7] 그의 아버지 안토니오는 산타파올리나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이다.[8] 안토니오는 건설 및 가구 배달업에 종사했고,[7] 루옹고의 어머니 패스퀄리나는 아일랜드계 캐나다인으로[9][10][11] 에어 캐나다에서 마케팅 업무에 종사했다.[7] 안토니오와 패스퀄리나는 안토니오가 1976년 몬트리올로 이민 온 후 그곳에서 결혼했다.[8]

루옹고에게는 레오와 파비오라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는데, 그들 또한 아이스하키 선수 특히 골텐더가 되기를 열망했다.[7] 파비오는 둘 중 더 나은 진전을 보였는데, 2004-05 시즌에 브리티시컬럼비아 하키 리그(BCHL)의 윌리엄스 레이크 팀버울브스에서 주니어 A 선수로 뛰었으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12] 그 이후로 그는 주니어 AAA 코치가 되었고, 레오는 스위스의 프로 아이스하키팀인 HC 루가노의 골텐더 코치를 맡았다.[13] 루옹고와 그의 가족은 세인트레너드의 이탈리아 이민자 공동체가 강한 몬트리올 북쪽의 버러에서 살았고,[7][10] 마르탱 브로되르의 집과 불과 네 블록 떨어져 있었다.[14] 브로되르는 루옹고가 NHL에 입문하기 6년 전에 뉴저지 데블스의 골텐더가 되었다. 루옹고는 가정 환경으로 인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다.[7][10]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어를, 어머니는 집에서 프랑스어가 약간 섞인 영어를 사용했다.[12]

루옹고는 1996년에 몬트리올의 프랑스어권 고등학교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12][15] 그는 8세에 포워드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10] 부친인 안토니오는 모든 아들들에게 축구를 가르쳤고 루옹고는 14세까지 축구를 했으며, 그 시점에 하키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7] 그는 처음에는 골텐더로 뛰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그가 먼저 스케이팅 실력을 키우기를 원했다.[10] 몇 년 후, 루옹고가 피위 팀에서 탈락한 후 그는 골텐더로 전환했다.[10] 11세에 그의 팀의 주전 골텐더가 나타나지 않았고, 루옹고가 그 포지션에서 뛰는 것을 여전히 망설이는 어머니에게 애원한 후 그는 골텐더로 나서서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다.[16] 2009년 8월, 루옹고가 세인트레너드에서 마이너 하키를 했던 경기장은 로버토 루옹고 아레나로 명명되었다. 2000년에 마르탱 브로되르 아레나로 개명된 후 NHL 골텐더의 이름을 딴 지역 내 두 번째 경기장이다.[16]

15세에 루옹고는 몬트리올-부라사와 함께 미제트에서 뛰었는데, 이 팀은 NHL 퀘벡주 골텐더인 브로되르와 펠릭스 포트뱅을 배출했다.[10] 루옹고는 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자 그랜트 퓨어를 자신의 성장기 영감으로 꼽았으며, 그의 "환상적인 글러브 세이브"에 대한 존경심을 언급했다.[10] 그는 아일런더스에서의 루키 시즌 동안 캘거리 플레임스와의 경기 전에 퓨어를 처음 만날 기회가 있었다.[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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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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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경력(1995–1999)

1995년에 퀘벡 메이저 주니어 하키 리그(QMJHL)의 아이스하키팀인 발도르 포뢰르는 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드래프트 골텐더인 루옹고를 지명했다.[17] 그는 1995-96 QMJHL 시즌에 발도르에서 주니어 아이스하키 경력을 시작했으며, 23경기에서 6승을 기록했다. 다음 시즌인 1996-97 QMJHL 시즌에 팀의 주전 골텐더로서 그는 32승으로 팀 기록을 경신했으며,[18] 리그 최고의 프로 유망주에게 주어지는 마이크 보시 트로피를 수상했다.[19] 1997년 CHL 탑 프로스펙츠 경기에서의 그의 활약 후, 상대 코치 돈 체리는 루옹고를 카나디앵 드 몽레알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켄 드라이든에 비유했고, NHL 센트럴 스카우팅 뷰로 국장 프랭크 보넬로는 그를 "프랜차이즈 골텐더"라고 극찬했다.[17]

루옹고는 1997년 NHL 드래프트에서 뉴욕 아일런더스에 1라운드 전체 4위로 지명되었다. 이 지명권은 원래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소유였으나 웬델 클라크, 매티유 슈나이더, D. J. 스미스트레이드하여 아일런더스로 넘어왔다.[20][21] 드래프트 당시 루옹고는 NHL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로 지명된 골텐더였으며,[22] 1983년 NHL 드래프트톰 버라소, 1973년 NHL 아마추어 드래프트존 데이비드슨, 1970년 NHL 아마추어 드래프트레이 마티뉴크의 전체 5위 지명 순위를 능가했다(루옹고의 지명은 이후 2000년 NHL 드래프트에서 아일런더스에 의해 전체 1위로 지명된 릭 디피에트로에 의해 추월되었다).[23][24][25][note 1]

루옹고는 드래프트 후, 1997-98 QMJHL 시즌에 포뢰르 소속으로 주니어 선수 경력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는 27승과 3.09의 경기당 실점률(GAA)을 기록했다. 그의 7번의 무실점1974-75 QMJHL 시즌닉 산자가 세운 QMJHL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애덤 루소도 나중에 2002-03 QMJHL 시즌에 동률을 이루었다).[26]

아일런더스는 루옹고가 1998-99 NHL 시즌에 NHL에서 뛰기를 계획했지만, 훈련 캠프에서 일관성 없는 경기 내용으로 인해 그 시즌에 QMJHL로 돌아갔다.[10] 1998년 10월 1일까지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루옹고는 다음 시즌 동안 주니어에서 아일런더스로 호출될 수 없었다.[10] 그는 시즌을 발도르에서 시작했지만, 1999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동안 아카디배서스트 타이탄으로 트레이드되어 1998-99 QMJHL 시즌의 나머지 기간 동안 뛰었다. 그는 23경기에서 2.74의 GAA를 기록하며 타이탄을 이끌고 두 번째 연속 프레지던츠 컵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그는 QMJHL 플레이오프 경력을 통산 출전 경기 (56경기), 출전 시간 (3,264:22분), 승리 (38승), 유효 슛 (1,808회)에서 리그 역대 최고 기록으로 마쳤다.[4]

뉴욕 아일런더스(1999–2000)

루옹고는 1999년 세계 주니어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의 활약 후, 1999년 1월 8일 아일런더스와 3년 277만 5천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10] 그는 1999-2000 AHL 시즌에 아일런더스의 아메리칸 하키 리그(AHL) 산하 팀인 로웰 록 몬스터스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시즌 초반, 루옹고는 백업 골텐더 웨이드 플라허티의 어깨 부상으로 1999년 11월 22일 아일런더스로 호출되었다.[7] 그는 11월 28일 NHL 데뷔전을 치렀고, 보스턴 브루인스를 상대로 43개의 슛을 막아내며 2대1 승리를 거두었다.[27] 루옹고의 초기 활약은 그를 베테랑 골텐더인 펠릭스 포트뱅을 제치고 아일런더스의 주전 골텐더로 자리매김하게 했다.[7] 루옹고의 뉴욕 데뷔 한 달 후, 포트뱅은 12월 19일 밴쿠버 커넉스케빈 위크스와 트레이드되었다.[28] 다음 달, 그는 8번째 경기에서 첫 NHL 무실점을 기록했고, 12월 27일 브루인스를 상대로 34개의 슛을 막아내며 3대0 승리를 거두었다.[29]

2000년 1월, 루옹고는 경기 당일 뉴욕에서 거주할 아파트를 찾으러 간 후 보스턴 브루인스에게 7골을 내준 것에 대해 아일런더스 단장 마이크 밀버리로부터 공개적인 비판을 받았다.[30] 밀버리는 언론에 "NHL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옹고는 아파트 한 곳만 봤을 뿐 평소 경기 당일 루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을 변호했다.[30]

아일런더스는 오프 시즌에 2000년 NHL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골텐더 릭 디피에트로를 지명했다. 디피에트로의 지명은 루옹고를 NHL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로 지명된 골텐더이자 아일런더스의 미래 골텐더의 자리에서 밀어냈다.[31] 결과적으로 밀버리는 같은 날인 2000년 6월 24일 루옹고를 센터 올리 요키넨과 함께 플로리다 팬서스로 트레이드하고, 그 대가로 윙어 마크 패리시와 센터 올레크 크바샤를 데려왔다.[31] 이 거래는 나중에 팬서스에게 불균형적으로 이득이 되었다고 여겨졌는데, 요키넨과 루옹고 둘 다 결국 스타 선수로 발전한 반면, 패리시와 크바샤는 그렇지 못했다.[32] 경력 후반에 루옹고는 이 트레이드에 놀라움을 표하며, 아일런더스가 디피에트로를 드래프트하기 전에는 팀이 그를 다가오는 시즌의 주전 골텐더로 준비하고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33]

플로리다 팬서스(200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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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플로리다 팬서스 소속 당시의 루옹고. 루옹고는 NHL에서 항상 "1"번을 달고 뛰었다.

팬서스 구단은 트레이드 후 루옹고에게 큰 찬사를 보냈다. 팬서스의 단장 브라이언 머리는 그를 "프랜차이즈 선수"로 치켜세우며 기대를 했고, 감독 테리 머리는 "그는 스탠리 컵 우승을 위해 팀이 반드시 보유해야 할 선수"라고 덧붙였다.[34] 그는 베테랑 골텐더 트레버 키드와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하며 팬서스와의 첫 훈련 캠프에 참가했다. 테리 머리 감독은 키드의 경험을 고려하여 시즌을 키드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35] 루옹고는 2000년 10월 9일, 보스턴 브루인스와의 경기에서 첫 선발 출전을 기록하며 18개의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4대2로 패했다.[36] 골텐더 임무를 분담하면서 루옹고는 43경기에 출전했고, 키드는 42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2001년 4월 7일 뉴욕 레인저스를 상대로 3대0 승리를 거두며 시즌 5번째 무실점으로 2000-01 NHL 시즌 루키 시즌(루옹고는 뉴욕에서 지난 시즌 최소 26경기를 뛰지 않았으므로 루키 자격을 갖추었다.)[37]을 마쳤다. 이 기록은 존 밴비스브룩1994-95 NHL 시즌1997-98 NHL 시즌에 세운 4무실점 기록을 넘어섰다.[38] 그는 동부 콘퍼런스에서 12위를 기록한 고전하는 팬서스에서 12승 24패 7무를 기록했고, 2.44의 GAA를 기록했다. 그의 .920 세이브 성공률은 리그 6위이자 루키 골텐더 중 역대 2위였으며, 지난 시즌 매니 퍼낸데즈가 세운 기록에 이어 두 번째였다.[39]

세 번째 NHL 시즌을 앞두고 루옹고는 2001년 9월 13일 팬서스와 4년 연장 계약에 동의했다.[40] 그는 2002 NHL 올스타전의 첫 NHL 영스타스 경기배리 멜로스 팀에서 뛰기로 선정되었고, 폭스 팀을 상대로 13대7로 승리했다.[41] 루옹고는 2001-02 NHL 시즌에 58경기에 출전한 후, 2002년 3월 20일 카나디앵 드 몽레알과의 경기에서 오른발목 인대 파열 부상을 입었다.[42] 시즌 남은 경기에서 출전하지 못한 채,[42] 그는 16승 33패 4무를 기록했으며, 2.77의 GAA와 .915의 세이브 성공률을 기록했다. 루옹고는 2002-03 NHL 시즌에 65경기를 뛰며 더 많은 부담을 안고 돌아왔다. 그는 144분 51초 동안 무실점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2003년 1월 20일 카나디앵 드 몽레알과의 경기에서 깨졌다.[39]

루옹고는 팬서스에서의 네 번째 시즌(2003-04 NHL 시즌)에 베지나 트로피레스터 B. 피어슨 어워드의 첫 후보로 지명되었는데, 각각 최고의 골텐더와 선수들이 선정한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1] 72경기에 출전하여 그는 2,303세이브와 2,475피유효 슛으로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및 피유효 슛 NHL 기록을 세웠다.[43] 두 기록 모두 이전 아일런더스 시절 팀 동료 펠릭스 포트뱅이 1996-97 NHL 시즌에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소속으로 세웠던 기록이었다.[44] 그의 결과적인 .931 세이브 성공률은 50경기 이상 선발 출전한 골텐더 중 1위였으며,[43] 1993-94 NHL 시즌에 반비스브룩이 세운 .924 기록을 깨고 팬서스 프랜차이즈 기록을 세웠다.[45] 그의 7번의 무실점은 그의 프랜차이즈 기록을 더욱 확장했고 리그 5위를 기록했다.[43] 시즌 중반에 그는 2004년 2월에 열린 첫 2004 NHL 올스타전에 이름을 올렸다. 동부 컨퍼런스에서 경쟁하며 그는 슈퍼 스킬스 컴피티션의 골텐더 경쟁 부문에서 가장 적은 실점을 허용하여 우승했다.[46] 다음 날, 그는 올스타전의 3피리어드에 출전하여 동부 컨퍼런스가 서부 컨퍼런스를 상대로 6대4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47] 시즌이 끝날 무렵, 그는 NHL 세컨드 올스타 팀에 이름을 올렸지만, 베지나 트로피는 동향 몬트리올 출신의 뉴저지 데블스마르탱 브로되르에게 돌아갔고, 탬파베이 라이트닝의 마르탱 생루이가 피어슨 어워드를 수상했다.[1]

루옹고는 2004-05 NHL 록아웃으로 인해 두 번의 국제 아이스하키 대회, 즉 2004SUS 아이스하키 월드컵2005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를 제외하고는 활동이 없었다. NHL이 2005-06 NHL 시즌에 재개될 예정이었지만, 루옹고는 계약이 없었다. 협상이 결렬된 후, 팬서스는 2005년 8월 11일 중재를 신청했다.[43] 이 과정에서 루옹고는 8월 25일 1년 320만 달러 계약을 따냈다.[48]

2006년 4월 13일, 루옹고는 오타와 세너터스를 상대로 5대4 연장전 승리를 거두며 팬서스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골텐더가 되었다.[49] 그는 1996-97 NHL 시즌에 밴비스브룩이 세운 27승 단일 시즌 팬서스 기록을 깨고 35승을 기록했다.[50] 두 번째 연속 비시즌에 자유 계약 선수가 될 예정이었던 그는 2006년 1월에 5년 3천만 달러 계약 제안을 공식적으로 거절하면서 팬서스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51] 또한 루옹고의 요구 사항에는 백업 골텐더 제이미 매클레넌의 재계약, 그의 오랜 골텐더 코치 프랑수아 알레르의 고용,[52] 계약의 노트레이드 조항이 발효될 때까지 그가 트레이드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개 성명 발표가 포함되었다고 보도되었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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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밴쿠버 커넉스로스앤젤레스 킹스 경기 당시의 루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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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밴쿠버 커넉스애너하임 덕스 경기 당시의 루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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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동계 올림픽 러시아전 당시의 루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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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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