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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아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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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아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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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미겔 아쿠냐 카베요(스페인어: Roberto Miguel Acuña Cabello, 1972년 3월 25일 ~ )는 파라과이의 전 축구 선수이다.

간략 정보 로베르토 아쿠냐Roberto Acuña, 개인 정보 ...

강인함과 지배적인 존재감 때문에 "엘 토로(스페인어: El Toro, 황소)"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였다. 그는 스페인사라고사데포르티보 라코루냐에서 프로 선수로 여러 해를 보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출전 기회가 드물었다.

아쿠냐는 파라과이 국가대표팀에서 100경기를 소화했으며, FIFA 월드컵 3회와 코파 아메리카 4회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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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경력

아쿠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아베야네다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고향인 파라과이로 이주하였다.[2] 1989년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축구를 시작하였으며, 5년 후 파라과이 국가대표로 뛰기 위해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이후 파라과이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A매치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카를로스 가마라에 이어 두 번째로 최다 출전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 뒤 아쿠냐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CA 인데펜디엔테, 보카 주니어스에서 총 4시즌을 보낸 후, 1997년 스페인 클럽 레알 사라고사와 계약하며 유럽 무대로 진출하였다. 사라고사에서는 중원을 지키는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3][4], 2001년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기여하였다. 같은 해 그는 파라과이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5]

이후 아쿠냐는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의 관심을 받았고, 이전 시즌 사라고사가 강등된 상황에서도 다섯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 계약과 1,1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이적하였다.[6] 그러나 갈리시아 클럽에서는 리그에서 한 시즌에 7경기 이상 출전하지 못했고[7], 부상 문제와 잦은 임대 생활로 어려움을 겪었다.[8]

아쿠냐는 2007년 처음 은퇴하며 파라과이 클럽 올림피아 아순시온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2009년 클루브 루비오 뉴와 계약하며 현역에 복귀하였고, 2012년 40세의 나이로 도세 데 옥투브레에 합류하였다.

2015년, 43세의 나이에 아쿠냐는 데포르티보 레콜레타가 파라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B로 승격하는 데 기여하였으며[9][10], 같은 해 12월에는 전 소속팀 루비오 뉴로 복귀하였다.[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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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경력

중앙 수비수 가마라와 마찬가지로, 아쿠냐는 FIFA 월드컵에 세 차례 출전했으며, 1998년, 2002년, 2006년 대회에서 총 100경기에 나서 5골을 기록했다.[13][14] 그는 세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파라과이 국가대표팀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으며, 2002년 6월 15일에 열린 16강 독일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마지막 순간 미하엘 발라크에게 팔꿈치를 사용해 퇴장당하면서 월드컵에서 퇴장당한 최초의 파라과이 선수가 되었다(누적 경고로 인한 퇴장).[15]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스웨덴에서 FIFA 직원에게 여성 사진작가와의 데이트를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16] 그는 2011년 6월 11일, 39세의 나이로 국제 경기 은퇴를 선언했으며, 루마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했다.[17]

아쿠냐는 비치 사커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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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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