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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정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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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정샹(중국어 간체자: 陆征祥, 정체자: 陸徵祥, 병음: Lù Zhēngxiāng, 한자음: 육징상, 1871년 6월 12일 ~ 1949년 1월 15일), 피에르셀레스탱 루(Pierre-Célestin Lu)는 중국의 외교관, 로마 가톨릭 신부이다. 중화민국의 국무총리를 두 번 지냈으며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중국 대표로 파견되었다.
1871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1884년 상하이 광방어학원(上海廣方言館)에서 외국어를 배웠으며, 189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공사관에서 공사인 허경징을 따라 통역사로 근무했다. 1899년 벨기에 시민인 베르테 보비(Berthe Bovy)과 혼인하였으며 개신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전향했다.
제1차 및 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청나라를 대표하였다. 1912년 쑨원의 중화민국에 가담하였으며 위안스카이 총통 체제의 임시 정부에서 그해 3월부터 9월까지 외무총장, 6월부터 9월부터 국무총리를 지내고 다시 11월부터 이듬해인 1913년 9월까지 외무총장을 지냈다. 1915년부터 1916년까지 다시 외무부장을 지냈으며, 이 시기에 중화민국은 일본의 21개조 요구의 일부를 수용했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중국 대표로 참석했으나 독일의 산둥지방 영토를 일본이 양도받게 되자 베르사유 조약의 서명을 거부하였다.
1922년부터 1927년까지 중화민국의 제네바 국제연맹 특사로 있었다. 부인의 사망 이후인 1927년에 벨기에 신트 안드리에스에서 베네딕도회 수도사가 되었으며, 이름 또한 돔 피에르셀레스탱(Dom Pierre-Célestin)으로 바꾸었다. 1935년에 신부 안수를 받았으며 1946년 8월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영예직인 헨트의 성 베드로 수도원장에 임명되었다. 중국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국공 내전으로 인해 귀국하지 못하고 벨기에 브뤼허에서 사망했다. 저서로 프랑스어로 저술한 《회억과 수상》(回憶與隨想, Souvenirs et pensées, 1945) 등이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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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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