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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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Lucius Aurelius Commodus Pompeianus, 177년경 – 211/212년)는 3세기 초에 활동했던 로마원로원 의원이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인 루킬라와 그녀의 재혼한 남편이자 콤모두스 황제 및 페르티낙스 황제 시기 정치적으로 활동했던 장군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1]

폼페이아누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Oates는 이에 대해서, "그는 위대한 '아욱토리타스'를 띠는 강력한 이름을 지녔으나, 그가 그런 능력 (capax imperii)을 가졌는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1] 그는 미네르비아 제1군단에서 트리부누스 밀리툼으로 복무하는 기간 루그두눔에서 한 재단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그의 가족의 안녕을 위해 헌정하였는데, 이는 그의 해당 직책 임이 세베루스 통치 초반, 즉 1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감을 의미한다.[2] 209년, 그는 집정관에 올랐다.[3][4] 폼페아이아누스가 최소 연령 때 (suo anno) 집정관이 된 것이었다면, John Oates가 제시한 것처럼, 그는 177년에 태어났을 것이고, 그가 다섯 살 때 그의 어머니 루킬라가 동생인 콤모두스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고 처형되었을 것이다. John Oates는 그와 그의 아버지 티베리우스는 콤모두스가 황제 자리에 오른, 180년에 교외 지역으로 들어가 살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1]

211/212년에, 그는 카라칼라의 형제인 게타에 대한 살해가 벌어지고 나서 카라칼라에 의해 처형되고 만다.[5] H.-G. 플라움은 카라칼라가 살인을 산적들의 소행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예방책을 취했다고 언급했다.[2]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231년 직권 직접관)와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241년 직권 집정관)는 그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6]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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