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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펑

중화인민공화국의 제4대 총리 (1928–2019)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리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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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펑(중국어 간체자: 李鹏, 정체자: 李鵬, 한자음: 이붕,[1] 1928년 10월 20일[2]~ 2019년 7월 22일)은 중공 총리를 지낸 중화인민공화국정치인이다. 천안문 6.4 항쟁 당시 시위 진압을 주도하는 입장을 보였기에 중국 공산당의 1당 통치에 반대하는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들과 반체제 인사들에게는 학살자로 불렸으며 서구에서는 “베이징의 도살자”(Butcher of Beijing)라는 별명을 얻었다.

간략 정보 중화인민공화국의 제4대 총리, 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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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와 경력

본관 중화민국 쓰촨성 청두[2] 출신으로 부친 리옌쉰(李硯勛)은 중국 공산당 초기의 혁명가였지만 중국 국민당에 처형되었다. 저우언라이와 저우의 부인 덩잉차오는 리옌쉰의 아들 리를 양자로 들였다. 이후 1945년 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 장자커우 공업전문학교소련 모스크바 동력대학교(기계학)에서 수학하였다. 1982년에는 당 중앙 위원, 1985년에는 정치국원, 1987년에는 중앙 정치국 상무 위원을 맡아 최고위 정치인의 자리에 올랐다.

양모 덩의 후원까지 받으며 국무원 총리까지 올랐지만, 1989년 톈안먼 사건을 수습한 이후 총서기에 임명되지는 않았다. 리 대신 자오쯔양 실각 후, 장쩌민(상하이 시당위원회 서기)이 총서기에 올랐다. 1988년 4월 중국 제4대 국무원 총리에 취임하여 10년간 역임하였고 이후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리 중국 권력의 핵심부에서 오랜 시간 권력을 누렸지만 '천안문 학살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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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논란 및 사건사고

리 전 총리가 국제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국무원 총리로 있던 1989년 톈안먼 시위에 강경 진압을 주장하며 관철시키면서다. 당시 명목상의 최고 직위에 있던 자오쯔양 총서기는 시위 중인 학생들과의 대화를 주장한 반면 리 전 총리는 인민해방군을 동원한 강제진압을 요구했고 결국 실질적인 최고권력자 덩샤오핑의 승인을 얻었다. 그해 6월3일부터 4일 새벽까지 탱크까지 동원한 무력진압으로 수천명의 시민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고 결국 민주화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식들을 통해 전력·석탄 등 에너지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거액을 부정 축재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으며 자녀들 도 조세회피와 비리 의혹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가족 관계

아들 샤오펑(小鵬)은 현재 교통운수부 부장이다. 딸 샤오린(小琳)은 기업가이며, 중화인민공화국 국유 전력기업의 경영인을 지냈다.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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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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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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