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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7 핵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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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7 토르(또는 Mk-7, 영어: Mark 7 Thor)는 미군이 채택한 최초의 전술 핵폭탄이었다. 또한 저고도 폭격 시스템(LABS)의 도움을 받아 토스 폭격을 통해 투하된 최초의 무기이기도 했다. 이 무기는 버스터-쟁글 작전에서 실험되었다. 마크 7은 전폭기 아래에 장착할 수 있도록 접이식 안정 날개를 장착했다. 마크 7 탄두(W7)는 30.5 in (77 cm) BOAR 로켓, 마크 90 베티 핵 폭뢰, MGR-1 어니스트 존 로켓, MGM-5 코퍼럴 탄도 미사일, 나이키 아작스 지대공 미사일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또한 SACEUR의 지휘 하에 독일 주둔 NATO에 배속된 영국 공군 캔버라 항공기가 투하할 수 있도록 공급되었다. 이는 미국과 영국 간의 영국 공군의 미국 핵무기 탑재에 관한 협정인 프로젝트 E의 후원 하에 이루어졌다. 영국에서는 1,650 lb. H.E. M.C.로 지정되었다.[1] 마크 7은 1952년부터 1967년(또는 68년)까지 운용되었으며 1,700~1,800발이 생산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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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마크 7은 공중부양 피트와 92개의 고폭 렌즈가 있는 내폭형 설계를 사용한 가변 위력 핵분열 무기였다. 이 무기는 다양한 무기 피트를 사용하여 8, 19, 22, 30, 31, 61 kt의 다양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3] 공중 폭발 및 접촉 신관 모드가 있었다. 안전을 위해 비행 중 삽입(in flight insertion)방식을 사용했으며, 나중 버전은 PAL A 유형의 무장 및 안전 시스템을 사용했다. 약 1,700~1,800발의 마크 7 폭탄과 1,350발의 W7 탄두가 생산되었다.[2][4]
마크 7 핵무기의 무게는 약 1,600 lb (725 kg)였다.[5] 일부 비행기 내부나 아래에 더 잘 맞도록 수직 접이식 안정 날개 하나가 장착되었다.[6] 이는 독특한 특징이었으며, 소형 비행기에 탑재할 수 있을 만큼 유선형으로 제작된 최초의 핵무기 중 하나였다.[7] 폭탄의 지름은 30 in (76 cm)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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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발 수단
여러 투발 수단을 위해 10가지 모델의 탄두가 생산되었다. 마크 7 폭탄 외에도 BOAR 공대지 로켓, MGR-1 어니스트 존 및 MGM-5 코퍼럴 전술 지대지 미사일, 베티 마크 90 폭뢰, MIM-14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 원자파괴탄이 포함되었다.[2]
실험
1955년 4월 15일 티팟 작전 MET 동안, 실험적인 플루토늄/우라늄-233 복합 피트를 사용하여 Mk7 탄두를 사용한 실험이 수행되었는데, 예상보다 33% 낮은 22kt의 위력을 냈다. Shot MET는 군사 효과 실험이었기 때문에 낮은 위력은 국방부가 실험 중 수행하던 많은 실험을 망쳤다. 국방부는 로스앨러모스로부터 이러한 대체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5][8][9]
T2 원자파괴탄

T2라고 불리는 원자파괴탄(ADM)이 1953년 2월부터 고려되었다.[10] 프로젝트에 대한 일부 작업이 완료되었지만 장치는 생산 전에 취소되었다. 이 시스템은 명령 및 타이머 기폭 옵션을 모두 갖출 예정이었다.[11]
생존품
마크 7 케이스는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국립 미국 공군 박물관의 냉전 격납고에 전시되어 있으며, 콜로라도주 덴버의 윙스 오버 더 로키스 박물관(Wings over the Rockies Museum)에도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제원
- 길이: 15.2 ft (4.6 m)
- 지름: 2.5 ft (0.76 m)
- 중량: 1,680 lb (762 kg)
- 신관: 공중 폭발 또는 접촉
- 위력: 다른 무기 피트(코어)를 사용하여 8에서 61 kt 사이로 위력을 변경할 수 있음.
- 내폭형 핵무기[4]

같이 보기
- RDS-4
- 핵무기 목록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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