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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로스카야 티시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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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시 러시아 연방 교정청 IZ-77/1 연방 국영 기관은 러시아 모스크바 소콜니키 구에 위치한 교도소이다. 이 시설은 모스크바 북동부에 위치한 거리의 이름을 따서 일반적으로 마트로스카야 티시나(러시아어: Матросская тишина, 직역: "선원의 침묵")로 알려져 있다. 마트로스카야 티시나는 연방 교정청에서 운영하며,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와 플라톤 레베데프, 1991년 소련 쿠데타 시도의 주역인 겐나디 야나예프, 그리고 알렉세이 나발니를 포함한 여러 유명 인사들을 수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마트로스카야 티시나 부지는 1775년 자선 단체가 운영하는 정신병원이 개설된 이래로 구금 시설이 있던 곳이며, 1870년에는 300명의 남성과 150명의 여성을 수용할 수 있는 모스크바 교도소로 개편되었다. 1912년에는 건축가 보리스 알베르티가 설계한 새로운 교도소 건물이 세워졌고, 1918년에는 비행 청소년 수용을 위한 소년원으로 바뀌었다.
마트로스카야 티시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 당국에 의해 1945년에 현재의 형태로 설립되었다. 1946년부터 1956년까지 러시아 내무부의 모스크바 지역 내무부 제14호로 운영되었으며, 이후 모스크바 내무부 본부 제1수용소(SIZO No. 1)로 개칭되었다. 처음에는 두 개의 주요 건물에 2,000명 이상의 성인 수감자를 수용했으며, 이후 세 개의 건물로 확장되었다.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세 번째 건물은 제3제국의 전범들과 내무부 특수 기술국에서 일했던 수감자들을 수용하는 특별 교도소로 사용되었다. 1953년부터 1997년까지 세 번째 건물은 비행 청소년들을 수용했으며, 1999년부터는 결핵 부서로 사용되고 있다. 1997년부터 제1수용소는 러시아 연방 법무부의 주요 교정국(GUIN)에 편입되었으며, 당시에는 심리 중이거나 선고를 기다리는 최대 5,000명의 수감자를 수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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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마트로스카야 티시나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수감자는 단 세 명뿐이다.
1995년 6월 5일, 악명 높은 청부 살인자이자 저명한 쿠르간 범죄 조직의 일원인 알렉산드르 솔로니크가 교도소를 탈출했다.
2004년 5월 2일, 우크라이나 남성 세르게이 예르쇼프는 벽돌을 해체하고 경계 울타리를 부수어 탈출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예르쇼프는 탈출 후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체포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시도로만 인정되었다.
2003년 3월 13일, 쿠르스크 출신의 수감자 알렉세이 줄게르가 교도소 당국으로부터 자유 이동권을 부여받은 후 사라졌고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줄게르는 며칠 후 교도소 부지 내 잔해 더미에 숨어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근처 쓰레기통의 폐기물을 먹고 있었다. 줄게르는 감방 동료들과 도박을 하여 큰 돈을 잃었고, 도박 빚으로 인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 숨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2013년 5월 7일, 도둑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올레그 토팔로프는 숟가락 하나만으로 파낸 감방 천장의 구멍을 통해 몸을 빼내어 탈출했으며, 지붕을 타고 경계 울타리를 넘어 도주했다. 당국은 토팔로프가 경비원에게서 산 사복과 등산 장비를 사용하여 탈출했기 때문에 토팔로프의 탈출에 대해 부주의하고 부패한 경비원들을 비난했다. 토팔로프는 다음 날 이즈마일롭스키 공원에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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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수감자
-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 플라톤 레베데프
-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 나디야 사브첸코
-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 알렉세이 나발니
- 드미트리 데무시킨
- 알렉산드르 호로샤빈
- 뱌체슬라프 이반코프
- 막심 마르친케비치
- 세르게이 마브로디
- 마이클 칼비
- 겐나디 야나예프
- 알렉산드르 바르카쇼프
- 세르게이 골로프킨
- 마리아 페트로바
- 발레리 볼딘
- 안드레이 데레비얀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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